#65 백촌강 전투 : 동북아시아 최초의 국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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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백촌강 전투 : 동북아시아 최초의 국제전
브라더윤
2025-06-03

The Battle of Baekchon River

Northeast Asia's First International War

白村江の戦い

東北アジア初の国際戦

 

[인트로]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브라더윤의 한국어 팟캐스트 시간입니다.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6월 3일 화요일에 이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한국의 대선 날입니다. 대선은 ‘대통령 선거’의 줄임말이에요. 대선은 한국의 가장 중요한 선거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과연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지, 많은 한국인이 긴장 속에 지켜보고 있습니다. 한국 뉴스나 정치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아실 수도 있을 텐데, 사실 최근 한국의 정치 상황은 굉장히 혼란스러워요. 정치적 입장이 다른 정치인들 사이의 갈등이 무척 심각해졌고, 정치인이 아닌 사람들도 정치적 견해의 차이를 두고 대립하는 일이 잦아졌죠. 이와 함께 최근 한국 경제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한국의 미래를 두고 많은 한국인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답니다.

 

○ 대선 (Presidential election / 大統領選挙)

○ 갈등 (Conflict / 葛藤)

○ 대립하다 (to confront / 対立する)

 

아마 오늘 있는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한국은 심각한 정치적 갈등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되는데요. 부디 한국이 이 갈등을 무사히 극복하고, 더 안정적인 나라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오늘의 주제를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 정치적 (Political / 政治的)

 

[주제 소개] 02:11

 

오늘은 여러분께 한국의 역사 이야기를 해 드리려고 해요. 정확히는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백촌강 전투’라는 고대의 역사적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해 드릴 건데요. 이 백촌강 전투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이 맞붙은 동북아시아 최초의 국제적인 전투였어요. 뿐만 아니라 이 전투가 이후 동북아시아 역사에 미친 영향 역시 아주 컸죠. 그렇다면 과연 이 백촌강 전투는 어떤 전투였을까요? 오늘은 이 백촌강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합니다.

 

○ 동북아시아 (Northeast Asia / 東北アジア)

○ 고대 (Ancient times / 古代)

○ 국제적 (International / 国際的)

 

그런데 시작하기 앞서,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사실 고대사는 정확한 문헌 자료가 매우 부족해요. 그렇기 때문에 동북아시아의 고대사에 대한 한국, 중국, 일본 역사학자들의 입장과 해석은 정말 많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오늘 드리는 이야기를 듣고 중국이나 일본의 청취자분들께서는, 학교에서,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과 다르다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만약 다른 부분이 있다면 너무 불쾌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한국인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설명하는 역사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문헌 자료 (Documentary data / 文献資料)

○ 불쾌하다 (to be unpleasant / 不快だ)

 

네! 그럼 지금부터 백촌강 전투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본문]

 

1. 7세기, 격동의 동북아시아 정세 04:25

 

○ 격동 (Upheaval, turmoil / 激動)

○ 정세 (Political situation, state of affairs / 情勢)

 

백촌강 전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7세기 초반 동북아시아의 상황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당시 한반도에는 세 개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북쪽에는 고구려, 남서쪽에는 백제, 남동쪽에는 신라가 있었죠. 이 세 나라는 한반도에서 서로 영토와 권력을 두고 아주 오랫동안 경쟁해 왔습니다. 이렇게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이 경쟁한 시대를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라고 부르기도 해요.

 

○ 고구려 (Goguryeo / 高句麗)

Explanation: An ancient Korean kingdom (37 BCE – 668 CE) that was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It was known for its vast territory, powerful military, and rich cultural heritage, often engaging in conflicts and diplomacy with neighboring Chinese dynasties and other Korean kingdoms.

説明: 古代朝鮮の三国時代(紀元前37年~西暦668年)の国家の一つ。広大な領土、強大な軍事力、豊かな文化遺産で知られ、隣接する中国の王朝や他の朝鮮半島の国々と紛争や外交を繰り広げた。

 

○ 백제 (Baekje / 百済)

Explanation: An ancient Korean kingdom (18 BCE – 660 CE) located in the southwest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It was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known for its significant maritime power and active cultural exchange with China and Japan.

説明: 朝鮮半島の南西部に位置した古代朝鮮の国家(紀元前18年~西暦660年)。三国時代の一つであり、強力な海上勢力と中国・日本との活発な文化交流で知られる。

○ 신라 (Silla / 新羅)

Explanation: An ancient Korean kingdom (57 BCE – 935 CE) that eventually unified most of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Silla Unified period. It was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and is known for its distinctive arts, Buddhist culture, and the eventual unification wars.

説明: 朝鮮半島の大部分を統一した古代朝鮮の国家(紀元前57年~西暦935年)。三国時代の一つであり、独特の芸術、仏教文化、そして最終的な統一戦争で知られる。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반이 되면, 삼국이 경쟁하던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시아 전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합니다. 이때 동북아시아에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이죠. 그건 바로, 중국의 통일이었습니다. 중국은 220년에 ‘한나라’라는 나라가 멸망한 후, 약 370년 동안 통일된 왕조 없이 여러 국가가 서로 경쟁하는 분열기가 이어졌는데요. 이 시기를 ‘위진남북조 시대’라고 불러요. 이 위진남북조 시대 동안 동북아시아의 여러 국가들, 즉 고구려, 백제, 신라와 바다 건너 일본은 중국의 압력을 피해 열심히 국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참고로 일본이 ‘일본’이라는 국호, 즉 나라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한 건 8세기부터이고, 그 전까지는 ‘’라고 불렀는데요. 오늘 팟캐스트에서는 ‘일본’이라는 이름 대신 당시 불렸던 ‘왜’라는 이름으로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 팽팽하다 (to be tense, to be taut / 緊迫している、ぴんと張っている)

○ 긴장감이 감돌다 (There is a sense of tension / 緊張感が漂う)

○ 왕조 (Dynasty / 王朝)

○ 분열기 (Period of division / 分裂期)

○ 위진남북조 시대 (Wei, Jin,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 魏晋南北朝時代)

Explanation: A period in Chinese history (220-589 CE) characterized by political fragmentation and disunity, following the fall of the Han Dynasty. During this time, China was divided into numerous competing states, leading to significant social and cultural changes.

説明: 漢王朝の滅亡後、政治的混乱と分裂が特徴的だった中国史の時代(西暦220年~589年)。この時期、中国は多数の競争する国家に分かれ、大きな社会・文化の変化をもたらした。

○ 국력 (National power / 国力)

○ 왜 (Wa / 倭)

Explanation: An ancient name used by the Chinese to refer to Japan or a people living in Japan, particularly during the Han, Wei, and Jin dynasties. It appears in early Chinese historical texts when describing interactions with the Japanese archipelago.

説明: 漢、魏、晋の時代に特に中国が日本または日本に住む人々を指すために用いた古代の名称。日本の列島との交流を記述する初期の中国史書に登場する。

 

네! 방금 말씀드렸듯이 약 370년 동안 이어진 중국의 분열기는 동북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에게는 기회였습니다. 역사적으로 동아시아에서 중국은 가장 강력한 나라였죠. 특히 중국에 통일 왕조가 들어서게 되면, 주변의 다른 국가들은 통일된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군사적으로도 통일된 중국을 이길 만한 나라는 거의 없었으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 통일 왕조가 없었던 위진남북조 시대 동안 동북아시아의 고구려, 백제, 신라, 왜는 상대적으로 느슨한 중국의 압박 속에서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느슨하다 (to be loose, to be slack / 緩い、だらしない)

 

그런데 6세기 말이 되면 상황이 급변하게 됩니다. 589년 ‘수나라’라는 나라가 약 370년 만에 중국을 통일하고, 이어서 618년에는 수나라에 이어 더욱 강력한 통일 왕조인 당나라가 들어섰죠. 사실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이 다시 통일되었다는 게 그렇게 엄청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요. 당시 동북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에게 중국의 재통일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거의 400년 가까이 분열되어 있던 중국이 다시 통일되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 급변하다 (to change rapidly / 急変する)

 

이러한 중국의 재통일로 인해 동북아시아 정세는 큰 변화에 직면하게 됩니다. 중국과 고구려, 백제, 신라, 그리고 왜 사이에 유지되고 있던 균형이 깨지고, 각 나라는 급변하는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정치적, 외교적 선택을 하게 되었죠. 이렇듯 7세기 초반 당시 동북아시아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 속에 벌어진 가장 중요한 전투가 바로 오늘 다룰 ‘백촌강 전투’인 것입니다. 이해가 되실까요?

 

○ 외교적 (Diplomatic / 外交的)

 

2. 7세기 초, 중반 동북아시아 국가들의 모습 09:26 

 

네! 이렇듯 7세기 동북아시아 정세는 정말 숨 가쁘게 돌아갔는데요. 백촌강 전투가 일어나기 전, 과연 동북아시아의 여러 국가들은 어떤 상황에 처해 있었을까요?

 

○ 숨 가쁘다 (to be breathless, to be hectic / 息が詰まる、慌ただしい)

 

2.1. 고구려 09:43

먼저 고구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고구려는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통일된 중국 왕조의 등장에 가장 먼저 위기감을 느끼는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수나라는 약 20년간, 네 차례에 걸쳐 고구려를 공격해 왔습니다. 오랫동안 이어진 수나라와의 전쟁은 점차 고구려의 국력 소모로 이어졌고, 국가 내부적으로도 귀족들 사이에 심각한 권력 다툼이 벌어지는 등 다양한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무시무시한 방식으로 권력을 잡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게 바로 ‘연개소문’이었습니다.

 

○ 국경을 맞대다 (to share a border with / 国境を接する)

○ 국력 소모 (Exhaustion of national power / 国力消耗)

○ 권력 다툼 (Power struggle / 権力争い)

 

연개소문은 642년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당시 고구려의 왕이었던 영류왕을 비롯해 많은 귀족들이 연개소문을 견제하고 있었고, 심지어 연개소문을 제거할 계획을 꾸미고 있었죠.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연개소문이 선수를 쳐 버립니다. 연개소문은 국가의 큰 행사가 있던 날, 자신의 반대파에 속하던 귀족들뿐 아니라, 심지어 왕까지 살해하고 권력을 장악했어요. 기록에 따르면 이날 연개소문이 죽인 사람들의 수가 대략 100명에 이른다고 하니, 정말 무시무시한 쿠데타였죠. 이후 고구려의 권력을 잡은 연개소문은 보장왕이라는 새로운 왕을 세우고, 자신이 그 왕의 뒤에서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당나라와의 전면 충돌로 이어지게 되죠.

 

○ 선수를 치다 (to make a preemptive move / 先手を打つ)

○ 권력을 장악하다 (to seize power / 権力を掌握する)

○ 권력을 휘두르다 (to wield power / 権力を振るう)

 

사실 연개소문이 권력을 장악하기 이전에, 고구려는 당나라에 대해 상당히 온건한 외교 정책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고구려는 당나라 이전에 있었던 수나라와의 전쟁 때문에 국력을 많이 소모한 상태였습니다. 수나라의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 내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고구려도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죠. 그러니 당시 고구려의 지배층은 새롭게 들어선 통일 왕조인 당나라와의 전면전을 피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 온건하다 (to be moderate, to be mild / 穏健だ)

○ 전면전 (All-out war / 全面戦争)

 

하지만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은 연개소문은 당나라에 대해 강경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당나라의 황제였던 당태종 이세민 역시 정치적 안정을 위해 고구려와의 충돌을 피할 수 없겠다고 생각했죠. 이러한 상황들이 맞물려서 결국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에 전면전이 벌어지게 되죠. 당나라는 645년, 661년, 667년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 고구려를 침공했는데요. 앞의 두 차례는 고구려가 승리했지만, 결국 마지막 전쟁 때 당나라와 신라 연합군에게 고구려가 패배하면서 고구려는 멸망하게 되죠. 이 부분은 이따 다시 한번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 강경하다 (to be firm, to be hardline / 強硬だ)

 

2.2. 백제 13:50 

한편 백제는 전통적으로 일본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신라와 고구려를 견제하며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는데요. 6세기 중반 신라가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 유역을 전부 차지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합니다. 원래 당시 백제와 신라는 동맹을 맺고 고구려에 대항하고 있었습니다. 둘이 힘을 합쳐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던 한강 유역을 빼앗았고, 이를 반반씩 나누어 차지하기로 했었죠. 하지만 신라가 백제를 배신하고 한강 유역을 전부 차지해 버린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에 있었던 백제와 신라 사이의 전투에서 백제의 왕이 신라군에게 사로잡히게 되었고, 여기서 백제의 왕이 목숨을 잃는 사건까지 벌어지게 되었죠.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전사한 백제군이 약 3만 명이었다고 해요. 이러한 국가적 위기 속에서 백제는 심한 혼란에 휩싸이게 됩니다. 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귀족들 사이의 권력 다툼이 극심해졌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구려와 신라는 계속 백제를 침략해 왔습니다. 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백제는 일본과 연합하여 함께 신라를 공격하기도 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합니다.

 

○ 우호적이다 (to be friendly, to be amicable / 友好的だ)

○ 유역 (River basin / 流域)

○ 동맹을 맺다 (to form an alliance / 同盟を結ぶ)

○ 배신하다 (to betray / 裏切る)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To make matters worse, out of the frying pan into the fire / 泣き面に蜂、踏んだり蹴ったり)

○ 연합하다 (to unite, to ally / 連合する)

 

이후 7세기가 되어 ‘무왕’이라는 왕이 즉위하면서 백제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게 됩니다. 무왕은 당나라와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고구려를 견제했고, 한편으로 신라와 전투를 벌여 신라로부터 빼앗긴 땅을 많이 회복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무왕에 이어 왕위에 오른 의자왕은 신라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합니다. 한국 역사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일본 역사서인 『일본서기』를 보면 아마도 의자왕은 일종의 쿠데타를 통해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던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러한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의자왕은 신라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했고, 신라의 성 약 40여 개를 빼앗는 데 성공하기도 하죠.

 

하지만 의자왕 때 백제는 당나라와의 관계가 심각하게 악화되어 버립니다. 당시 백제는 지속적으로 당나라에게 고구려를 공격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당나라를 통해 고구려를 견제하고 있었던 거죠. 백제는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면 뒤에서 고구려를 함께 공격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했을 때 의자왕은 당나라와의 약속을 어기고 고구려를 공격하지 않았죠. 대신 당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던 신라를 공격합니다. 이런 일들로 인해 당나라는 백제와 단교하게 되었고, 이 틈을 타서 648년에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으며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관계가 강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약 10년 뒤, 백제의 멸망으로 이어지게 되죠.

 

○ 악화되다 (to worsen, to deteriorate / 悪化する)

○ 단교하다 (to sever diplomatic relations / 断交する)

 

2.3. 신라 18:02

그리고 이어서 신라의 상황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 중 가장 늦게 발전하기 시작한 신라는 6세기 중반 이후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영토를 넓히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7세기 들어, 백제와 고구려의 끊임없는 침공에 시달리며 큰 위기를 겪게 되었죠. 특히 방금 말씀드렸듯이, 백제 의자왕의 끈질긴 공격은 신라를 위태롭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신라는 생존을 위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해야 했죠.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642년, 훗날 신라의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라는 인물이 목숨을 걸고 고구려의 연개소문에게 달려가 도움을 구합니다. 당시 고구려와 신라는 적대적 관계였기 때문에,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도박이었죠. 김춘추는 신라의 외교관으로서 연개소문에게 고구려와 신라가 관계를 회복하고 함께 백제를 공격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연개소문은 고구려의 도움을 받고 싶으면 신라의 땅 일부를 내놓으라고 말하죠. 아무리 고구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해도, 땅을 내놓으라는 요청에 응하기는 어려웠겠죠? 결국 김춘추는 연개소문의 제안을 거절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고구려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비록 무사히 탈출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아주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죠.

 

○ 끈질기다 (to be persistent, to be tenacious / しつこい、根気強い)

○ 위태롭다 (to be precarious, to be dangerous / 危うい、危険だ)

○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다 (to seek a new breakthrough / 新たな活路を模索する)

○ 적대적 (Hostile / 敵対的)

 

고구려와의 교섭이 실패한 이후, 647년 김춘추는 왜를 방문합니다. 전통적으로 왜는 백제와 우호적인 관계였고 신라와는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김춘추가 왜를 방문한 것 역시 김춘추로서는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었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김춘추가 이때 왜를 방문한 기록이 현재 한국 측 역사 기록에는 남아 있지 않고, 일본의 역사 책인 『일본서기』에만 남아 있는데, 당시 김춘추가 왜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마도 왜에게 군사적 협력을 요청했거나, 혹은 백제와 신라 사이에서 중립적인 자세를 취해줄 것을 요청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왜는 그러한 김춘추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았고, 김춘추는 이번에도 큰 소득 없이 신라로 돌아와야 했죠.

 

○ 협력 (Cooperation / 協力)

○ 중립적 (Neutral / 中立的)

○ 소득 없이 (Without any gain, to no avail / 無駄に、何の成果もなく)

 

그런데 이때, 김춘추가 아무 이유 없이 왜로 향했던 것은 아닙니다. 아까, 전통적으로 왜는 백제와의 우호 관계를 유지해 왔고, 신라와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사실 이 시기에 그러한 백제와 왜의 관계가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잠시 뒤, 왜의 상황은 설명할 때 이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고구려와 왜 모두에게 도움을 거절당한 김춘추는 648년 당나라로 향하게 됩니다. 당나라에 가서 당 태종에게 군사 원조를 요청하고 본격적인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동맹, 나당동맹을 맺게 되죠. 이로써 신라는 당나라라는 강력한 후원자를 얻게 되었고, 이것이 훗날 동북아시아 국제 정세에 소용돌이를 몰고 오게 됩니다.

 

○ 나당동맹 (Silla-Tang Alliance / 羅唐同盟)

Explanation: A military alliance formed in the 7th century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Silla and the Chinese Tang Dynasty. This alliance was crucial in enabling Silla to conquer Baekje (660 CE) and Goguryeo (668 CE), leading to the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under Silla. However, after the fall of Goguryeo, the alliance broke down, and Silla fought against Tang forces to secure its full independence.

説明: 7世紀に朝鮮半島の新羅と中国の唐が結んだ軍事同盟。この同盟は新羅が百済(660年)と高句麗(668年)を征服し、朝鮮半島の統一を達成する上で極めて重要だった。しかし、高句麗滅亡後、同盟は決裂し、新羅は完全な独立を確保するために唐軍と戦った。

 

2.4.왜 22:53

네, 이어서 7세기 초 왜의 상황에 대해 설명드려 보겠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전통적으로 왜는 한반도의 백제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 왔습니다. 그런데 6세기 말이 되면 일본은 여러 나라와 관계를 맺는 새로운 외교 방식을 펼치기 시작해요. 백제 중심의 외교 정책에서 벗어나서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 그리고 한반도의 신라, 고구려와도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었고, 이것을 통해 혼란스러운 동북아시아 정세 속에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얻고 국력을 키우려고 했던 것이죠.

 

이러한 왜의 대외 노선 변경은 당시 복잡하게 흘러갔던 동북아시아 정세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백제와 신라 사이의 대립이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지면서, 왜에 대한 백제와 신라의 외교적 접근과 요청이 더욱 빈번해졌습니다. 신라는 자신들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백제는 신라 견제를 위해 왜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 대외 노선 (Foreign policy line / 対外路線)

 

그런데 이렇게 외교적인 노선을 다변화하는 중에 왜의 지배층 사이에서 새로운 경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바로 백제에 대한 반감의 목소리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죠. 오랫동안 백제와 왜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했는데, 왜 갑자기 백제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걸까요?

 

○ 다변화하다 (to diversify / 多角化する)

○ 반감 (Antipathy, resentment / 反感)

 

이건 아마도 608년에 있었던 백제의 국서 탈취 사건과도 관련이 있다고 추정돼요. 이 사건에 대해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608년, 왜는 수나라에 사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왜의 사신들은 수나라 황제의 말이 적힌 국서를 가지고 왜로 돌아오고 있었죠. 그런데 백제가 왜 사신들의 배를 세우고 수나라 황제의 국서를 탈취, 즉 빼앗아 버린 겁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외교 문서인 국서를 함부로 빼앗는 건 현대적 관점에서 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죠? 아마도 당시 백제는 왜가 수나라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맺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수나라 황제의 국서를 빼앗는 외교적인 무례까지 저지르게 되었던 것으로 보여요. 아무튼 이러한 사건으로 인해 백제와 왜의 관계가 악화되게 되었고, 이 틈을 타서 610년에 신라가 왜에 사신을 보내 왜와의 관계를 회복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런 상황이 맞물려 7세기 초반 왜에서 친백제 노선과 친신라 노선 사이의 대립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해가 되실까요?

 

○ 국서 (State letter, diplomatic document / 国書)

○ 탈취 (Seizure, usurpation / 奪取)

○ 상황이 맞물리다 (Situations interlock, circumstances align / 状況が連動する、状況が噛み合う)

 

자! 그런데 이 시기에 왜의 지배층 내부는 사실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었습니다. 갈등의 두 은 ‘소가’ 가문과 ‘상궁왕가’였어요. 소가 가문은 당시 왜의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호족 가문이었고, 상궁왕가는 당시 왜의 황족 가문 중 가장 유력한 가문이었어요. 지금도 일본에서 큰 존경을 받고 있는 쇼토쿠 태자라는 아주 유명한 황자로부터 이어진 가문입니다. 두 가문의 대립은 다음 천황의 자리를 두고 벌어진 왕위 계승 문제와 얽히면서 더 큰 갈등으로 번지게 되었죠.

 

○ 축 (Axis / 軸)

○ 황족 (Imperial family / 皇族)

○ 황자 (Imperial prince / 皇子)

○ 왕위 계승 (Succession to the throne / 王位継承)

 

그리고 이러한 갈등 상황 속에서 643년, 왜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소가 가문의 ‘소가 이루카’라는 인물이 정치적 반대파였던 상궁왕가 일족을 멸망시키는 사건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사건으로 상궁왕가가 사라지면서 소가 가문, 특히 소가 가문의 리더였던 ‘소가 이루카’의 권세는 더욱 커지게 되었고, 소가 이루카는 더욱 독단적인 정치를 펼치게 되었죠. 하지만 이 사건 2년 뒤인 645년, 왜에서는 일본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인 ‘을사의 변’이라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소가 이루카’가 목숨을 잃게 되고, 소가 가문은 권력을 잃게 되었죠. 당시 을사의 변을 주도했던 건, 훗날 덴지 천황이 되는 ‘나카노오오에 황자’와 ‘나카토미노 카타마리’라는 인물이었습니다.

 

○ 독단적 (Dogmatic, arbitrary / 独断的)

 

을사의 변을 통해 소가 가문이 몰락하면서, 왜에서는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하고 천황 중심의 정치 체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는데요. 이것을 다이카 개신이라고 부릅니다. 이 다이카 개신을 기점으로 왜는 천황을 중심으로 하는 진정한 의미의 중앙 집권 국가로 탈바꿈하게 되었다고 평가받고 있죠. 나라의 군주를 천황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이 다이카 개신 이후의 일입니다. 그 이전까지 왜에서는 나라의 군주를 ‘대왕’이라는 뜻의 오오키미라고 불렀다고 해요.

 

○ 세력 (Power, influence, force / 勢力)

○ 다이카 개신 (Taika Reform / 大化の改新)

Explanation: A series of political and governmental reforms in Japan, initiated in 645 CE during the Asuka period. These reforms aimed to establish a centralized government based on the Chinese bureaucratic system, strengthening imperial rule and introducing various administrative and land reforms.

説明: 飛鳥時代の西暦645年に始まった日本の政治・行政改革の一連。これらの改革は、中国の官僚制度に基づいた中央集権国家の確立を目指し、天皇の支配を強化し、様々な行政・土地改革を導入した。

○ 중앙 집권 국가 (Centralized state / 中央集権国家)

 

네! 당시 다이카 개신을 이끈 세력은 당나라의 발전된 제도와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내부 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기존의 백제 중심 외교에서 벗어나 당나라, 그리고 신라와의 관계를 더욱 강화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왜는, 여전히 신라보다는 백제와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 주긴 합니다. 특히 648년 신라가 당나라와 동맹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큰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백제와 더 우호적인 관계를 강화하게 되기도 했죠.

 

자! 아까 제가 나당동맹이 맺어지기 전인 647년에, 신라의 김춘추가 왜를 방문했었다고 말씀드렸었죠? 김춘추가 전통적인 적대국이었던 왜를 방문했던 데에는, 바로 이러한 왜 내부의 정치적 변화가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3. 백촌강 전투 직전 상황 31:39

 

자, 그럼 이제 '백촌강 전투'가 어떻게 발발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신라는 고구려와 왜로부터 군사적 지원을 받는 데 실패하자, 648년 마침내 당나라와 손을 잡고 '나당동맹'을 맺게 됩니다. 이 동맹은 당시 동아시아의 판도를 뒤흔들 거대한 변화의 시작이었죠. 나당동맹의 첫 번째 목표는 바로 '백제'였습니다. 당나라는 고구려를 공격하기 전에 백제를 먼저 공격함으로써 후방의 안전을 확보하고 싶었고, 신라는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백제를 당나라의 힘을 빌려 무너뜨리고 싶었죠.

 

○ 판도 (Scope, sphere of influence / 版図、勢力範囲)

○ 후방 (Rear, background / 後方)

 

결국 660년, 나당연합군은 백제 공격을 시작합니다. 당나라의 황제 고종은 13만 명이라는 엄청난 대군을 파견하여 신라와 함께 백제를 공격했습니다. 당군의 주력 부대는 바다 건너서, 신라는 백제의 동쪽에서 동시에 백제를 공격하는 작전을 세웠죠. 당나라와 신라의 협공으로 인해 얼마 안 가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이 함락되었고 660년 9월, 백제는 결국 나당연합군에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약 700년 가까이 이어진 백제 왕조는 이렇게 너무나도 허무하게 멸망해 버렸죠. 이후 당나라는 백제 지역에 웅진도독부라는 기관을 설치해 이곳을 통치하고자 했습니다.

 

○ 협공 (Pincer attack, joint attack / 挟撃)

○ 항복하다 (to surrender / 降伏する)

○ 웅진도독부 (Ungjin Commandery / 熊津都督府)

Explanation: An administrative and military commandery established by the Tang Dynasty in the former territory of Baekje after its fall in 660 CE. It was one of several such commanderies established by Tang to control the conquered areas of the Korean Peninsula, but its direct control was often contested by Silla and local Baekje resistance forces.

説明: 660年に百済が滅亡した後、唐が旧百済領に設置した行政・軍事機関。唐が朝鮮半島の征服地を統治するために設置した複数の都督府の一つだが、新羅や百済の地方勢力の抵抗によって直接的な支配はしばしば争われた。

 

하지만 백제가 멸망한 직후, 백제 지역 곳곳에서는 당나라에 저항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당나라를 몰아내고 다시 백제를 건설하고자 한 거죠. 이것을 백제 부흥 운동이라고 부릅니다. 특히 복신과 도침 같은 백제의 옛 장수들이 중심이 되어 세력을 모았고, 곧 사비성에 주둔한 당군을 공격할 정도로 세력을 키웠습니다. 이들의 강력한 저항에 당나라와 신라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죠. 기록을 보면 백제 부흥군은 약 10일 만에 200개의 성을 다시 빼앗았다고 합니다. 정말 엄청난 기세였죠.

 

○ 저항하다 (to resist / 抵抗する)

○ 백제 부흥 운동 (Baekje Restoration Movement / 百済復興運動)

Explanation: A series of military and political movements by former Baekje aristocrats and commoners, often supported by Japan (Wa), to restore the Baekje kingdom after its fall to the Silla-Tang alliance in 660 CE. These movements involved fierce battles and resistance against the Tang occupation forces and Silla, but ultimately failed to revive the kingdom.

説明: 660年に新羅と唐の連合軍によって百済が滅亡した後、旧百済の貴族や庶民が、日本の支援を受けながら百済王国の再興を目指して行った一連の軍事・政治運動。唐の占領軍と新羅に対する激しい戦闘と抵抗が含まれたが、最終的には王国の復活には至らなかった。

○ 장수 (Commander, general / 将帥、将軍)

 

이어서 백제 부흥군은 힘을 더하기 위해 왜에 구원군 파견을 요청했습니다. 660년 9월, 백제 멸망 소식과 부흥군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왜에 처음 전해졌고, 이어서 백제 부흥군의 핵심 인물인 복신이 왜에 사신을 보내 군사 지원을 요청했죠. 이때 당나라군 포로 100여 명을 함께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복신은 왜에 군사 지원을 요청하는 것과 함께, 당시 왜에 머물고 있던 백제 왕자 '부여풍'의 귀국도 요청했습니다. 의자왕이 당나라에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에, 왜에 있던 왕자 부여풍을 새로운 백제의 왕으로 옹립하고자 했던 것이죠.

 

○ 구원군 (Reinforcements, relief force / 救援軍)

○ 귀국 (Return to one's home country / 帰国)

○ 옹립하다 (to enthrone, to set up (a king) / 擁立する)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시죠? 왜 백제의 왕자가 왜에 머물고 있었던 것일까요? 이것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사실 부여풍이 왜에 머물렀던 이유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역사학자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습니다. 부여풍은 백제 의자왕의 아들이며, 631년 당시 태자였던 아버지 의자왕의 결정에 따라 왜로 보내졌어요. 참고로 부여풍은 백제의 왕위 계승권을 가지고 있던 왕자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고대사 기록에서는 부여풍을 '인질(質)'로 기록하고 있고, 나카노오오에 황자가 부여풍에게 당시 왜의 최고 관직을 주기도 했다는 점을 바탕으로, 일부 일본 역사학자들은 백제가 일본의 지배를 받는 속국이었다고 주장합니다. 확실히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한 나라의 왕자를 다른 나라에 보내는 행위는 속국이 인질을 맡기는 것처럼 느껴지죠.

 

○ 관직 (Government post, official position / 官職)

 

하지만 한국 역사학자들은 여기서 말하는 ‘인질’을 현대적 관점의 인질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의 ‘인질’은 국가 간 우호와 협력을 보증하기 위해 왕족이나 고위 인사를 다른 나라에 보내는 외교적 관습이었다고 보는 거예요. 백제는 고구려와의 전쟁이 본격화되던 4세기 중반 이후부터 왜와 군사적으로 협력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성이 있었고, 왕자나 고위 인사를 왜에 파견해서 왜의 군사적 지원을 확보하거나 왜와의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적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보는 것이죠. 따라서 부여풍도, 당시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던 신라와의 전쟁에서 왜의 협력을 얻기 위해 왜에 보내졌을 거라고 추측하는 거예요. 이 외에,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싼 백제 내부의 권력 다툼을 해소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왕자를 왜에 보냈다는 해석도 존재합니다.

 

○ 보증하다 (to guarantee, to assure / 保証する)

○ 고위 인사 (High-ranking official / 高位の人物)

 

다만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고대사 자료는 너무 빈약하기 때문에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역시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료로 확인할 수 없는 부분들은 역사학자들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채울 수밖에 없죠. 여기서는, 이렇게 한국과 일본 양국의 해석 차이가 있다는 부분만 언급하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 빈약하다 (to be poor, to be meager / 貧弱だ)

○ 실체 (True nature, reality / 実体)

 

아무튼 부여풍은 왜에 약 30년 가까이 머무르면서 백제를 대표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기록을 보면 그는 천황에게 정치적 조언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관계였다고 하니, 당시 왜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볼 수 있죠. 당시 복신이 이끌었던 백제 부흥군은 이렇듯 왜와 가까운 부여풍이 왜의 지원을 이끌어내는 데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하여, 그를 새로운 왕으로 옹립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 조언 (Advice, counsel / 助言)

○ 영향력 (Influence / 影響力)

 

백제 부흥군의 요청을 받은 왜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왜는 곧바로 백제의 요청을 받아들여 구원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합니다. 왜가 백제 구원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는 당시 천황이었던 사이메이 천황과 훗날 덴지천황이 되는 '나카노오오에 황자'의 행동에서 잘 드러납니다. 사이메이 천황과 나카노오오에 황자는 백제 구원군의 출병독려하기 위해 수도인 아스카를 떠나 직접 규슈 지방으로 이동하기까지 했죠.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수도를 떠나는 정도였으니, 당시 왜가 백제 구원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사이메이 천황은 규슈에서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사이메이 천황에 이어 아들인 나카노오오에 황자가 백제 지원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됩니다.

 

○ 파견하다 (to dispatch, to send / 派遣する)

○ 출병 (Dispatch of troops / 出兵)

○ 독려하다 (to encourage, to urge / 督励する)

 

하지만 왜가 처음부터 나당연합군과 전투를 진행했던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주로 물자 지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요. 왜는 크게 세 차례에 걸쳐서 백제에 구원군을 파병하는데, 1차 파병에서는 5천 명의 병사를 파견하여 부여풍을 호송하게 했습니다. 이 병사들 대부분은 부여풍과 함께 백제 부흥군에 필요한 물자를 전달한 뒤 다시 왜로 돌아왔고, 일부는 백제 부흥군에 합류했죠.

 

○ 물자 (Supplies, goods / 物資)

○ 파병 (Dispatching troops / 派兵)

○ 호송 (Escort / 護送)

○ 합류하다 (to join, to merge / 合流する)

 

이후 662년 3월에 2차 파병이 진행됩니다. 이때 왜는 1,000척의 배와 함께 2만 7천여 명의 대군을 파견했어요. 당시 왜의 인구는 약 500만 명에서 600만 명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을 감안하면 왜가 백제 구원에 정말 진심이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때 보낸 2만 7천여 명은 당시 왜 각지에서 모은 병사들이라는 데서도 큰 의미를 가집니다. 이전까지 왜가 백제를 돕기 위해 보냈던 병사들은 대부분 규슈 지방 호족들의 군대였어요. 하지만 662년에 이루어진 이 파병은, 일본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적인 규모의 해외 파병이 이루어진 것이죠. 물론 완벽하게 통일된 중앙 군대라고 보기는 어렵고, 여전히 각 지방 호족들의 군대를 모은 것에 가깝긴 했지만, 그럼에도 최초의 전국적 규모의 파병이었다는 데서 의미를 가집니다. 그리고 이것 역시 다이카 개신 이후의 왜의 중앙 집권화 과정과 관련이 된다고 볼 수 있겠죠.

 

○ 각지 (Various places, everywhere / 各地)

○ 호족 (Powerful local clan / 豪族)

○ 전국적 (Nationwide / 全国的な)

○ 중앙 군대 (Central army / 中央軍)

○ 중앙 집권화 (Centralization / 中央集権化)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에 백제 부흥군 내부에서 심각한 내분이 발생합니다. 백제 부흥군을 이끌었던 복신과 새롭게 왕으로 옹립된 부여풍 사이에 권력 다툼이 발생했고, 결국 부여풍은 복신을 처단하게 되었죠. 그리고 왜가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당나라 역시 7천여 명의 추가 병력을 파견합니다. 참고로 이때 당나라가 파병한 병력은 대부분 수군이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이 병력이 중심이 되는 나당 연합군이 백촌강에서 백제, 왜 연합군과 붙게 되었고, 그 결과 백제, 왜 연합군이 참패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 공교롭게도 (Coincidentally, by chance / 奇しくも、あいにく)

○ 내분 (Internal strife / 内紛)

○ 처단하다 (to execute, to punish / 処断する)

○ 병력 (Troops, manpower / 兵力)

○ 연합군 (Allied forces,联合军 / 連合軍)

○ 참패하다 (to suffer a crushing defeat, to be utterly defeated / 惨敗する)

 

4. 백촌강 전투의 진행과 결과 44:36

 

자, 그럼 이제 백촌강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떠했는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663년 8월, 왜는 3차 파병을 진행합니다. 이때는 만 명의 대군이 파병되었죠. 662년에 보냈던 2차 파병군은 처음에는 백제 땅이 아닌 신라 땅에서 신라를 공격하는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 3차 파병군은 곧바로 백제 땅을 향해 진군했습니다.

 

○ 진군하다 (to march, to advance (troops) / 進軍する)

 

당시 백제 부흥군과 왜군은 수적으로는 나당 연합군보다 우세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백제와 왜 연합군은 대략 2만 7천여 명에서 4만 명의 대규모 병력이었을 것으로 추정돼요. 나당 연합군의 수는 이보다 적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당시 동아시아 최강 국가였던 당나라군은 비록 수가 적더라도 군사력 면에서는 훨씬 우위에 있었습니다. 당나라의 함선들은 백제와 왜의 배들보다 훨씬 크고 견고했으며, 병사들의 훈련도나 무기 성능도 뛰어났죠.

 

○ 수적으로 (Numerically / 数的に)

○ 우세하다 (to be superior, to be dominant / 優勢だ)

○ 함선 (Warship, vessel / 艦船)

○ 훈련도 (Degree of training / 訓練度)

 

먼저 움직인 것은 나당연합군이었습니다. 8월 17일, 나당연합군의 육군이 당시 백제 부흥군의 근거지였던 주류성을 포위했죠. 그리고 나당연합군의 배 170여 척이 백촌강에서 왜와 백제 연합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어 8월 27일, 왜의 수군이 백촌강에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합니다. 당시 당나라의 기록을 보면, 이때 왜의 배가 약 400척이었다고 말하고 있고, 신라의 기록을 보면 약 1000척이었다고 하는데, 어쨌든 굉장한 수의 수군이었음은 확실한 것 같아요. 이 왜 수군의 선두에 있던 배들이 당나라군을 향해 진격하면서 본격적인 백촌강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이 첫날 전투에서 왜와 백제 연합군은 당나라 수군에게 패하게 되었죠.

 

○ 포위하다 (to besiege, to surround / 包囲する)

○ 선두 (Front, lead / 先頭)

○ 진격하다 (to advance, to charge / 進撃する)

 

이어서 8월 28일, 결정적인 전투가 벌어집니다. 기록을 보면, 백제와 왜 연합군은 이날도 큰 실수를 저지른 것으로 보여요. 일본의 역사서인 『일본서기』를 보면, 당시 백제와 왜 연합군은 백촌강의 날씨를 제대로 살피지 못했다고 합니다. 날씨가 자신들에게 불리했음에도, 이들은 자신들의 수적 우위를 믿고 전날과 마찬가지로 나당연합군을 향해 먼저 돌격합니다. 물론 백제와 왜 연합군이 아무 이유 없이 돌격한 것은 아니긴 해요. 당시 백제 부흥군의 근거지인 주류성이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었고, 만약 주류성이 함락된다면 백제와 왜의 수군은 고립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러니 이런 무모한 돌격을 감행할 수밖에 없긴 했을 겁니다.

 

○ 결정적 (Decisive, crucial / 決定的)

○ 우위 (Superiority, advantage / 優位)

○ 돌격하다 (to charge, to assault / 突撃する)

○ 고립되다 (to be isolated / 孤立する)

○ 무모하다 (to be reckless, to be foolhardy / 無謀だ)

○ 감행하다 (to dare to do, to carry out boldly / 敢行する)

 

하지만 이것을 예상하고 있던 나당연합군은 자신들을 향해 돌격해 오는 백제와 왜 연합군의 수군을 양옆에서 공격했고, 그 결과, 백제와 왜 연합군은 말 그대로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일본서기』 기록에 따르면 이날 전투에서 많은 수의 왜 병사가 배에서 뛰어 내려 강에서 익사했다고 해요. 그리고 당나라의 기록을 보면, 백촌강에서 백제와 왜 연합군과 네 번 붙어서 모두 당나라가 승리했고, 이들의 배 400여 척을 불태웠다고 합니다. 여기서 난 연기가 하늘을 가득 채웠고, 백제와 왜 연합군 병사들의 피로 백촌강이 빨갛게 물들었다고 해요.

 

○ 익사 (Drowning / 溺死)

○ 불태우다 (to burn down / 燃やす)

 

함께 백촌강 전투에서 군대를 지휘하던 부여풍은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주류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 고구려로 도주해 버립니다. 왕이 떠나 버린 백제 부흥군은 나당 연합군에게 제대로 저항할 수 없었고, 이후 주류성을 지키던 백제군과 왜군이 나당 연합군에게 항복하면서 백제 부흥군 세력은 와해되게 됩니다.

 

○ 도주하다 (to flee, to escape / 逃走する)

○ 와해되다 (to disintegrate, to fall apart / 瓦解する)

 

이 백촌강 전투의 결과는 당시 동북아시아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째, 백제 부흥 운동은 사실상 실패로 끝나게 됩니다. 부여풍은 간신히 고구려로 도망쳤지만, 백제를 재건하려는 노력은 이 전투를 계기로 거의 막을 내리게 되죠. 결국 백제가 완전히 멸망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많은 수의 백제 유민들이 왜로 건너가기도 했습니다.

 

○ 유민 (Refugee, displaced people / 遺民)

 

둘째, 왜는 이 전투에서 막대한 피해를 입으며 한반도에서 그 영향력을 크게 잃게 됩니다. 이 전투 이후 왜는 한반도에 직접적으로 대규모 군사력을 파견하는 것을 꺼리게 되었죠. 일본이 다시 한반도로 군사를 파견하는 건 이로부터 약 900년 뒤의 일입니다. 백촌강 전투의 패배는 왜가 대외적인 확장을 중단하고 내부적인 체제 정비에 더욱 몰두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왜는 나당연합군이 왜를 공격하러 올 수 있다는 두려움에 규슈 지방에 산성을 쌓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규슈 지방에는 일본식 산성이 아닌 백제식 산성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것이 이 당시에 지어진 것이라고 추정돼요.

 

○ 대외적 (External, foreign / 対外的な)

○ 체제 정비 (Systemic reorganization / 体制整備)

○ 몰두하다 (to be absorbed in, to be engrossed in / 没頭する)

○ 산성 (Mountain fortress / 山城)

 

셋째, 백제라는 후방의 위협이 사라진 만큼, 당나라와 신라는 고구려를 공격하는 데 더욱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백촌강 전투 이후 불과 5년 뒤인 668년에는 고구려마저 나당연합군에 의해 멸망하게 됩니다. 이후 신라는 당나라와의 나당전쟁에서 승리하며 676년 삼국통일을 완성하게 되죠. 백촌강 전투는 당이 동아시아의 강력한 제국으로 성장하고, 신라가 한반도에서 강력한 통일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 박차를 가하다 (to spur on, to accelerate / 拍車をかける)

○ 나당 전쟁 (Silla-Tang War / 羅唐戦争)

Explanation: A series of conflicts fought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Silla and the Chinese Tang Dynasty from 668 to 676 CE, following the fall of Goguryeo. Initially allies in conquering Baekje and Goguryeo,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Tang deteriorated as Tang attempted to establish direct rule over the Korean Peninsula. Silla, aiming for full independence and unification, fought against Tang forces, eventually driving them out and establishing the Unified Silla Kingdom.

説明: 高句麗滅亡後の668年から676年にかけて、朝鮮半島の新羅と中国の唐の間で繰り広げられた一連の戦争。当初は百済と高句麗を征服するための同盟関係にあったが、唐が朝鮮半島への直接支配を試みたことで新羅と唐の関係は悪化した。完全な独立と統一を目指す新羅は唐軍と戦い、最終的に唐軍を追い出して統一新羅を確立した。

○ 자리매김하다 (to establish oneself, to be positioned as / 位置づけられる)

○ 전환점 (Turning point / 転換点)

 

결론적으로 백촌강 전투는 한국, 중국, 일본이 맞붙은 최초의 국제전이었으며, 동북아시아의 국제 질서를 재편하고 각국의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엔딩] 53:17

 

네,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께 동북아시아 고대사의 가장 중요한 전투 중 하나인, ‘백촌강 전투’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너무 길고 어려운 내용이라서 여기까지 들어 주신 분이 적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데요. 오늘 에피소드를 듣고 무리 없이 이해하신 분들이라면, 아마 한국 대학에서 한국어로 수업을 듣는 것도 무리가 없으신 분들일 거라고 생각됩니다. 오늘도 홈페이지에 트랜스크립트와 단어를 정리해 두었으니, 필요하신 분들은 에피소드 설명란의 트랜스크립트 링크를 눌러서 확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오늘도 저의 팟캐스트에 끝까지 함께해 주신 분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저는 다음 시간에 더 즐거운, 재미있는, 유익한 이야기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건강 관리 잘해 주시고요. 우리는 다음 시간에 봅시다. 그럼 모두 안녕!

 

Vocabulary

 

○ 대선 (Presidential election / 大統領選挙)

○ 갈등 (Conflict / 葛藤)

○ 대립하다 (to confront / 対立する)

○ 정치적 (Political / 政治的)

○ 동북아시아 (Northeast Asia / 東北アジア)

○ 고대 (Ancient times / 古代)

○ 국제적 (International / 国際的)

○ 문헌 자료 (Documentary data / 文献資料)

○ 불쾌하다 (to be unpleasant / 不快だ)

○ 고구려 (Goguryeo / 高句麗)

Explanation: An ancient Korean kingdom (37 BCE – 668 CE) that was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It was known for its vast territory, powerful military, and rich cultural heritage, often engaging in conflicts and diplomacy with neighboring Chinese dynasties and other Korean kingdoms.

説明: 古代朝鮮の三国時代(紀元前37年~西暦668年)の国家の一つ。広大な領土、強大な軍事力、豊かな文化遺産で知られ、隣接する中国の王朝や他の朝鮮半島の国々と紛争や外交を繰り広げた。

○ 백제 (Baekje / 百済)

Explanation: An ancient Korean kingdom (18 BCE – 660 CE) located in the southwestern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It was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known for its significant maritime power and active cultural exchange with China and Japan.

説明: 朝鮮半島の南西部に位置した古代朝鮮の国家(紀元前18年~西暦660年)。三国時代の一つであり、強力な海上勢力と中国・日本との活発な文化交流で知られる。

○ 신라 (Silla / 新羅)

Explanation: An ancient Korean kingdom (57 BCE – 935 CE) that eventually unified most of the Korean Peninsula during the Silla Unified period. It was one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and is known for its distinctive arts, Buddhist culture, and the eventual unification wars.

説明: 朝鮮半島の大部分を統一した古代朝鮮の国家(紀元前57年~西暦935年)。三国時代の一つであり、独特の芸術、仏教文化、そして最終的な統一戦争で知られる。

○ 팽팽하다 (to be tense, to be taut / 緊迫している、ぴんと張っている)

○ 긴장감이 감돌다 (There is a sense of tension / 緊張感が漂う)

○ 왕조 (Dynasty / 王朝)

○ 분열기 (Period of division / 分裂期)

○ 위진남북조 시대 (Wei, Jin, Southern and Northern Dynasties / 魏晋南北朝時代)

Explanation: A period in Chinese history (220-589 CE) characterized by political fragmentation and disunity, following the fall of the Han Dynasty. During this time, China was divided into numerous competing states, leading to significant social and cultural changes.

説明: 漢王朝の滅亡後、政治的混乱と分裂が特徴的だった中国史の時代(西暦220年~589年)。この時期、中国は多数の競争する国家に分かれ、大きな社会・文化の変化をもたらした。

○ 국력 (National power / 国力)

○ 왜 (Wa / 倭)

Explanation: An ancient name used by the Chinese to refer to Japan or a people living in Japan, particularly during the Han, Wei, and Jin dynasties. It appears in early Chinese historical texts when describing interactions with the Japanese archipelago.

説明: 漢、魏、晋の時代に特に中国が日本または日本に住む人々を指すために用いた古代の名称。日本の列島との交流を記述する初期の中国史書に登場する。

○ 느슨하다 (to be loose, to be slack / 緩い、だらしない)

○ 급변하다 (to change rapidly / 急変する)

○ 외교적 (Diplomatic / 外交的)

○ 숨 가쁘다 (to be breathless, to be hectic / 息が詰まる、慌ただしい)

○ 국경을 맞대다 (to share a border with / 国境を接する)

○ 국력 소모 (Exhaustion of national power / 国力消耗)

○ 권력 다툼 (Power struggle / 権力争い)

○ 선수를 치다 (to make a preemptive move / 先手を打つ)

○ 권력을 장악하다 (to seize power / 権力を掌握する)

○ 권력을 휘두르다 (to wield power / 権力を振るう)

○ 온건하다 (to be moderate, to be mild / 穏健だ)

○ 전면전 (All-out war / 全面戦争)

○ 강경하다 (to be firm, to be hardline / 強硬だ)

○ 우호적이다 (to be friendly, to be amicable / 友好的だ)

○ 유역 (River basin / 流域)

○ 동맹을 맺다 (to form an alliance / 同盟を結ぶ)

○ 배신하다 (to betray / 裏切る)

○ 엎친 데 덮친 격으로 (To make matters worse, out of the frying pan into the fire / 泣き面に蜂、踏んだり蹴ったり)

○ 연합하다 (to unite, to ally / 連合する)

○ 악화되다 (to worsen, to deteriorate / 悪化する)

○ 단교하다 (to sever diplomatic relations / 断交する)

○ 끈질기다 (to be persistent, to be tenacious / しつこい、根気強い)

○ 위태롭다 (to be precarious, to be dangerous / 危うい、危険だ)

○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다 (to seek a new breakthrough / 新たな活路を模索する)

○ 적대적 (Hostile / 敵対的)

○ 협력 (Cooperation / 協力)

○ 중립적 (Neutral / 中立的)

○ 소득 없이 (Without any gain, to no avail / 無駄に、何の成果もなく)

○ 나당동맹 (Silla-Tang Alliance / 羅唐同盟)

Explanation: A military alliance formed in the 7th century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Silla and the Chinese Tang Dynasty. This alliance was crucial in enabling Silla to conquer Baekje (660 CE) and Goguryeo (668 CE), leading to the unific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under Silla. However, after the fall of Goguryeo, the alliance broke down, and Silla fought against Tang forces to secure its full independence.

説明: 7世紀に朝鮮半島の新羅と中国の唐が結んだ軍事同盟。この同盟は新羅が百済(660年)と高句麗(668年)を征服し、朝鮮半島の統一を達成する上で極めて重要だった。しかし、高句麗滅亡後、同盟は決裂し、新羅は完全な独立を確保するために唐軍と戦った。

○ 대외 노선 (Foreign policy line / 対外路線)

○ 다변화하다 (to diversify / 多角化する)

○ 반감 (Antipathy, resentment / 反感)

○ 국서 (State letter, diplomatic document / 国書)

○ 탈취 (Seizure, usurpation / 奪取)

○ 상황이 맞물리다 (Situations interlock, circumstances align / 状況が連動する、状況が噛み合う)

○ 축 (Axis / 軸)

○ 황족 (Imperial family / 皇族)

○ 황자 (Imperial prince / 皇子)

○ 왕위 계승 (Succession to the throne / 王位継承)

○ 독단적 (Dogmatic, arbitrary / 独断的)

○ 세력 (Power, influence, force / 勢力)

○ 다이카 개신 (Taika Reform / 大化の改新)

Explanation: A series of political and governmental reforms in Japan, initiated in 645 CE during the Asuka period. These reforms aimed to establish a centralized government based on the Chinese bureaucratic system, strengthening imperial rule and introducing various administrative and land reforms.

説明: 飛鳥時代の西暦645年に始まった日本の政治・行政改革の一連。これらの改革は、中国の官僚制度に基づいた中央集権国家の確立を目指し、天皇の支配を強化し、様々な行政・土地改革を導入した。

○ 중앙 집권 국가 (Centralized state / 中央集権国家)

○ 판도 (Scope, sphere of influence / 版図、勢力範囲)

○ 후방 (Rear, background / 後方)

○ 협공 (Pincer attack, joint attack / 挟撃)

○ 항복하다 (to surrender / 降伏する)

○ 웅진도독부 (Ungjin Commandery / 熊津都督府)

Explanation: An administrative and military commandery established by the Tang Dynasty in the former territory of Baekje after its fall in 660 CE. It was one of several such commanderies established by Tang to control the conquered areas of the Korean Peninsula, but its direct control was often contested by Silla and local Baekje resistance forces.

説明: 660年に百済が滅亡した後、唐が旧百済領に設置した行政・軍事機関。唐が朝鮮半島の征服地を統治するために設置した複数の都督府の一つだが、新羅や百済の地方勢力の抵抗によって直接的な支配はしばしば争われた。

○ 저항하다 (to resist / 抵抗する)

○ 백제 부흥 운동 (Baekje Restoration Movement / 百済復興運動)

Explanation: A series of military and political movements by former Baekje aristocrats and commoners, often supported by Japan (Wa), to restore the Baekje kingdom after its fall to the Silla-Tang alliance in 660 CE. These movements involved fierce battles and resistance against the Tang occupation forces and Silla, but ultimately failed to revive the kingdom.

説明: 660年に新羅と唐の連合軍によって百済が滅亡した後、旧百済の貴族や庶民が、日本の支援を受けながら百済王国の再興を目指して行った一連の軍事・政治運動。唐の占領軍と新羅に対する激しい戦闘と抵抗が含まれたが、最終的には王国の復活には至らなかった。

○ 장수 (Commander, general / 将帥、将軍)

○ 구원군 (Reinforcements, relief force / 救援軍)

○ 귀국 (Return to one's home country / 帰国)

○ 옹립하다 (to enthrone, to set up (a king) / 擁立する)

○ 관직 (Government post, official position / 官職)

○ 보증하다 (to guarantee, to assure / 保証する)

○ 고위 인사 (High-ranking official / 高位の人物)

○ 빈약하다 (to be poor, to be meager / 貧弱だ)

○ 실체 (True nature, reality / 実体)

○ 조언 (Advice, counsel / 助言)

○ 영향력 (Influence / 影響力)

○ 파견하다 (to dispatch, to send / 派遣する)

○ 출병 (Dispatch of troops / 出兵)

○ 독려하다 (to encourage, to urge / 督励する)

○ 물자 (Supplies, goods / 物資)

○ 파병 (Dispatching troops / 派兵)

○ 호송 (Escort / 護送)

○ 합류하다 (to join, to merge / 合流する)

○ 각지 (Various places, everywhere / 各地)

○ 호족 (Powerful local clan / 豪族)

○ 전국적 (Nationwide / 全国的な)

○ 중앙 군대 (Central army / 中央軍)

○ 중앙 집권화 (Centralization / 中央集権化)

○ 공교롭게도 (Coincidentally, by chance / 奇しくも、あいにく)

○ 내분 (Internal strife / 内紛)

○ 처단하다 (to execute, to punish / 処断する)

○ 병력 (Troops, manpower / 兵力)

○ 연합군 (Allied forces,联合军 / 連合軍)

○ 참패하다 (to suffer a crushing defeat, to be utterly defeated /

○ 진군하다 (to march, to advance (troops) / 進軍する)

○ 수적으로 (Numerically / 数的に)

○ 우세하다 (to be superior, to be dominant / 優勢だ)

○ 함선 (Warship, vessel / 艦船)

○ 훈련도 (Degree of training / 訓練度)

○ 포위하다 (to besiege, to surround / 包囲する)

○ 선두 (Front, lead / 先頭)

○ 진격하다 (to advance, to charge / 進撃する)

○ 결정적 (Decisive, crucial / 決定的)

○ 우위 (Superiority, advantage / 優位)

○ 돌격하다 (to charge, to assault / 突撃する)

○ 고립되다 (to be isolated / 孤立する)

○ 무모하다 (to be reckless, to be foolhardy / 無謀だ)

○ 감행하다 (to dare to do, to carry out boldly / 敢行する)

○ 익사 (Drowning / 溺死)

○ 불태우다 (to burn down / 燃やす)

○ 도주하다 (to flee, to escape / 逃走する)

○ 와해되다 (to disintegrate, to fall apart / 瓦解する)

○ 유민 (Refugee, displaced people / 遺民、流民)

○ 대외적 (External, foreign / 対外的な)

○ 체제 정비 (Systemic reorganization / 体制整備)

○ 몰두하다 (to be absorbed in, to be engrossed in / 没頭する)

○ 산성 (Mountain fortress / 山城)

○ 박차를 가하다 (to spur on, to accelerate / 拍車をかける)

○ 나당 전쟁 (Silla-Tang War / 羅唐戦争)

Explanation: A series of conflicts fought between the Korean kingdom of Silla and the Chinese Tang Dynasty from 668 to 676 CE, following the fall of Goguryeo. Initially allies in conquering Baekje and Goguryeo, the relationship between Silla and Tang deteriorated as Tang attempted to establish direct rule over the Korean Peninsula. Silla, aiming for full independence and unification, fought against Tang forces, eventually driving them out and establishing the Unified Silla Kingdom.

説明: 高句麗滅亡後の668年から676年にかけて、朝鮮半島の新羅と中国の唐の間で繰り広げられた一連の戦争。当初は百済と高句麗を征服するための同盟関係にあったが、唐が朝鮮半島への直接支配を試みたことで新羅と唐の関係は悪化した。完全な独立と統一を目指す新羅は唐軍と戦い、最終的に唐軍を追い出して統一新羅を確立した。

○ 자리매김하다 (to establish oneself, to be positioned as / 位置づけられる)

○ 전환점 (Turning point / 転換点)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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浅野啓介. (2023). 白村江の戦いから古代山城、天智天皇即位、庚午年籍へ. 文化財論叢奈良文化財研究所学報.

倉本一宏. (2017). 戦争の日本古代史 好太王碑、白村江から刀伊の入寇まで (講談社現代新書 2428). 講談社.

倉本一宏. (2019). はじめての日本古代史 (ちくまプリマー新書). 筑摩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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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브라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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