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짜장면은 어떻게 한국의 대표 음식이 되었나 : 한국 중화 요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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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짜장면은 어떻게 한국의 대표 음식이 되었나 : 한국 중화 요리의 역사
브라더윤
2025-06-12

How Did Jajangmyeon Become Korea's Representative Dish

The History of Korean-Chinese Cuisine

ジャージャー麺はいかにして韓国の代表料理となったか

韓国中華料理の歴史

 

[인트로]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브라더윤의 한국어 팟캐스트 시간입니다.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6월 13일 금요일에 이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혹시 한국어 책을 읽어 보신 적이 있나요? 아마 번역된 한국 책을 읽어 보신 분들을 있을 것 같은데, 한국어 원서를 읽으신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전 에피소드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3년 가까이 일본어를 공부해 왔는데요. 일본어를 공부하면서 제가 관심 있는 분야의 일본어 원서를 찾아 읽는 게 일본어 공부에 꽤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소설과 역사를 좋아해서, 일본 소설과 일본 역사책을 일본어 원서로 읽었답니다. 원서를 읽으면, 처음에는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서 답답한 마음이 큰데요. 그 답답함을 이겨내고 꾸준히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언어가 주는 매력을 훨씬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처음에는 힘드시겠지만 조금씩 조금씩 한국어 원서를 읽어 나가다 보면, 분명 한국어 공부에 큰 도움이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여러분께 추천하고 싶은 한국어 책이 생기면 나중에 한 권씩 소개해 드리도록 할게요.

 

원서 (Original work, original text / 原書、原典)

 

[주제 소개] 02:13

 

네! 그럼 이제 오늘의 주제를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요. 얼마 전에 한 청취자분께서 리퀘스트를 보내 주셨습니다. 바로 짜장면의 역사에 대해 알고 싶다는 리퀘스트였어요. 여러분, 짜장면이 뭔지 알고 계실까요? 짜장면은 한국의 대표적인 중화 요리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중화 요리는, 중국 음식이 다른 나라에서 그 나라의 입맛에 맞게 변화한 음식을 말해요. 즉, ‘한국 중화 요리’라고 하면, 한국인 입맛에 맞게 변화한 중국 음식을 뜻하는 거죠. 이해가 되실까요? 이 짜장면이라는 음식은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음식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데요. 과연 이 짜장면은 언제 처음 등장했고, 어떻게 해서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걸까요? 오늘은 여러분께 이 짜장면에 숨어 있는 역사 이야기를 해 드리려고 합니다.

 

○ 중화 요리 (Chinese cuisine / 中華料理)

Explanation:

A broad culinary tradition originating from China, known for its diverse regional styles, cooking methods, and ingredients. It includes famous dishes like 짜장면 (Jajangmyeon) and 짬뽕 (Jjamppong) that are particularly popular in Korea, adapted to local tastes.

説明:

中国に起源を持つ幅広い料理の伝統で、多様な地域ごとのスタイル、調理法、食材で知られる。韓国で特に人気があり、現地の味覚に合わせて変化したジャージャー麺やチャンポンなどの有名料理も含まれる。

 

[본론]

 

1. ‘한국 화교’의 시작 03:33

 

네! 짜장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먼저 한국 중화 요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한국 중화 요리는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한국의 중화 요리는 한국인이 아닌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에 의해 시작되고 발전되어 왔죠. 그런데 여러분, 혹시 이렇게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고 계실까요? 네. 이렇게 중국에서 해외로 이주해 거주하는 중국인들을 ‘화교’라고 부릅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화교는 중국에서 해외로 이주한 중국인들 중에서 이주한 나라의 국적취득하지 않고 중국 국적과 중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후손을 말해요. 즉 ‘한국 화교’는 중국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정착해 살면서,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중국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겁니다. 그리고 만약 외국으로 이주해 중국 국적을 포기하고 이주한 나라의 국적을 취득했다면, 이 경우에는 이 사람들을 ‘화인’이라고 부릅니다. 화교의 역사가 일찍 시작된 동남아시아 지역에는 ‘화인’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 이주하다 (to migrate, to relocate / 移住する)

○ 거주하다 (to reside, to live / 居住する)

○ 화교 (Overseas Chinese / 華僑)

Explanation:

Ethnic Chinese people who live outside of China as permanent residents or citizens of other countries, while maintaining some cultural or ancestral ties to China.

説明:

中華圏の外に住み、他の国の永住者または市民である民族的中国人。中国との文化的なつながりや祖先の繋がりを維持している。

○ 국적 (Nationality, citizenship / 国籍)

○ 취득하다 (to acquire, to obtain / 取得する)

○ 후손 (Descendant, offspring / 子孫)

○ 정착하다 (to settle down, to establish oneself / 定着する)

○ 정체성 (Identity / アイデンティティ)

○ 형성하다 (to form, to shape / 形成する)

○ 화인 (Ethnic Chinese person / 華人)

Explanation:

In a broad sense, 화인 refers to ethnic Chinese people who have migrated overseas and acquired the nationality of their country of residence, distinguishing them from 화교 who retain Chinese nationality. In a narrower sense, it refers to those who have naturalized in their country of residence but maintain cultural homogeneity with their homeland.

説明:

広い意味では、華人(かじん)は「海外へ移住した中国系の人々で、滞在国の国籍を取得した者」を指し、中国国籍を維持する華僑とは区別される概念。狭い意味では、「国籍は滞在している国に帰化したが、文化的には本国と同質性を維持する」場合を指す。

 

 

자! 다른 나라에서 발달한 중화 요리와 마찬가지로, 한국 중화 요리 역시 중국에서 이주해 온 화교들에 의해 시작되고 발전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한국 화교의 역사가 한국 중화 요리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는 건데요. 그럼 과연 한국 화교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요? 먼 옛날부터 중국과 한국은 서로 긴밀하게 교류해 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한국으로 그리고 한국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록을 통해 확인 가능한 중국인의 첫 대규모 한국 이주는 17세기의 명청교체기 때 있었던 것으로 보여요. ‘명청교체기’는 옛 중국의 왕조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들어설 때를 가리키는 말인데요. 이 시기에 많은 수의 명나라 유민들이 조선으로 이주해 왔다고 해요. 그럼 이때 들어온 명나라 유민들을 한국 화교의 시작이라고 봐도 될까요? 일반적으로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왜일까요? 아까 제가 화교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화교는 이주한 나라에서도 자신들의 정체성과 커뮤니티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씀드렸죠? 하지만 명청교체기에 이주해 온 중국인들은 이후 조선에서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했어요. 그러니 엄밀한 의미에서 이들을 화교라고 보기는 어렵답니다. 이해가 되실까요?

 

○ 명청교체기 (Ming-Qing Transition / 明清交替期)

Explanation:

This period refers to the tumultuous era in Chinese history from the mid-17th century when the Ming Dynasty fell and the Qing Dynasty rose to power. It was marked by widespread warfare, political instability, social unrest, and significant demographic changes, profoundly impacting Chinese society and culture.

説明:

17世紀半ばの明朝の滅亡と清朝の興隆に伴う中国史の激動の時代。広範な戦争、政治的不安定、社会不安、著しい人口変動が特徴で、中国社会と文化に深い影響を与える。

○ 엄밀하다 (to be strict, to be rigorous / 厳密だ)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이 조금 흥미로운데요. 역사적으로 중국에서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간 중국인들은 그 지역에서 일찍부터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이들은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명청교체기 같은 왕조 교체기에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도 했고, 아니면 상업 활동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기도 했는데요. 이유가 뭐가 되었든, 이들은 이주한 지역에서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형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미얀마 만달레이에는 이미 15세기에 화교들을 위한 회관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회관'은 같은 지역 출신이나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 도우며 활동하기 위해 만든 단체나 건물을 말해요. 이렇듯 특히 동남아시아에 정착한 화교들은 일찍부터 자신들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그 지역에서 상당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와 달리, 한국은 중국과 아주 가까우면서도 화교 커뮤니티가 일찍부터 형성되지 못했어요. 여기에는 과연 어떤 이유가 있는 걸까요?

 

상업 (Commerce, business / 商業)

회관 (Guildhall, assembly hall / 会館)

○ 영향력을 행사하다 (to exert influence / 影響力を行使する)

 

이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여기서는 저의 생각을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한국 지역에 화교 커뮤니티가 일찍부터 형성되지 못한 데에는, 아무래도 한국이 전통적으로 외부 집단과 외부 문화에 배타적이었고 상업 활동에도 부정적이었다는 게 큰 이유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말이 너무 어렵죠? 조금 쉽게 설명을 드려 볼게요. 지금의 한국이 건국되기 전에, ‘조선’이라는 왕조 국가가 한반도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선은 다른 나라와 문화에 대해 상당히 배타적인 자세를 취했어요. '배타적'이라는 건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밀어내려고 하는 것을 의미해요. 물론 조선은 중화 사상의 영향을 받은 나라였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중국과 중국 문화에 대해 아주 우호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중화 사상’은 중국과 중국의 문명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사상을 말해요.

 

○ 배타적 (Exclusive, exclusionary / 排他的)

○ 중화 사상 (Sinocentrism / 中華思想)

Explanation:

A traditional Chinese worldview that regarded China as the cultural, political, and economic center of the world, with other nations being considered peripheral or subordinate. This ideology influenced China's foreign relations and its perception of itself as the 'Middle Kingdom.'

説明:

中国を世界の文化的、政治的、経済的中心と見なし、他の国々を周辺的または従属的と捉える伝統的な中国の世界観。この思想は中国の対外関係や、自らを「中華」と見なす認識に影響を与える。

 

다만, 아무리 중화 사상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고 해도, 조선은 조선의 왕을 중심으로 하는 고유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의지가 아주 강한 나라였습니다. 그래서 명청교체기에 명나라 유민들이 조선으로 들어왔을 때에도, 이들에게 세금을 깎아 주는 등의 우대 정책을 펼치긴 했지만, 이들이 조선 내에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유지하기보다는 조선이라는 사회에 동화되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결국 당시 들어왔던 명나라 유민들은 화교 커뮤니티를 이루지 못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선에 동화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참고로 동화된다는 건, 서로 다른 것이 같아지는 것을 의미해요. 

 

○ 우대 정책 (Preferential policy / 優遇政策)

○ 동화되다 (to be assimilated / 同化する)

 

또한 조선은 상업 활동을 부정적으로 생각했어요. 당시 조선 사회는 농업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상업은 낮게 평가했거든요. 그래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을 사회적으로 낮은 계층으로 취급했고, 조선 사람이 해외로 나가서 장사를 하거나 외국 상인들이 조선에 들어와 장사를 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죠. 그렇기 때문에 상업을 목적으로 중국인들이 조선에 이주해 올 수 없었고, 다른 지역에 비해 화교 커뮤니티의 형성이 더뎠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해가 되실까요?

 

더디다 (to be slow, to be sluggish / 遅い、捗らない)

 

자! 한국에서 화교의 시작이 늦어진 것에 대해 조금 길게 이야기를 드려 봤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진정한 의미의 한국 화교의 역사는 언제 시작될까요? 일반적으로 1882년을 한국 화교 역사의 시작으로 봅니다. 이때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한국 화교의 역사가 1882년에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여러분, 혹시 ‘임오군란’이라는 사건, 기억하시나요? 예전에 제가 명동에 대한 에피소드에서 설명드린 적이 있는 사건인데요.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실지 모르겠네요.

 

○ 임오군란 (Imo Incident / 壬午軍乱)

Explanation:

A military revolt that occurred in Korea in 1882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was primarily instigated by disgruntled soldiers of the old army who were upset about their low pay, discrimination compared to modernized forces, and poor living conditions. The rebellion quickly escalated, leading to attacks on government officials, Japanese legation members, and eventually prompting military intervention from both Qing China and Japan.

説明:

1882年、朝鮮王朝で発生した軍事反乱。主に、低賃金、近代化された軍隊との差別、劣悪な生活環境に不満を抱いた旧式軍の兵士たちによって引き起こされる。反乱は急速に拡大し、政府高官や日本公使館員への攻撃につながり、最終的に清と日本の両国からの軍事介入を招く。

 

임오군란은 1882년 조선에서 일어난 일종의 군사 반란이었습니다. 당시 조선은 일본의 지원을 받아 서양식 군대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구식 군대, 즉 이전부터 있던 옛날식 군대를 차별하는 일들이 발생하게 됐고, 여기에 불만을 품은 구식 군대가 반란을 일으킨 것이죠. 이해가 되실까요? 당시 조선 정부는 이 임오군란을 진압할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죠. 그때 청나라에서 오장경이라는 장군이 3,000명의 병사를 이끌고 조선에 왔습니다. 그런데 이 3,000명 중에는 청나라 군인들을 돕기 위해 따라온 청나라 상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어요. 이들은 오장경 장군의 보호를 받으면서 조선에 정착하여 자유롭게 장사를 시작하게 되죠.

 

○ 군사 반란 (Military rebellion / 軍事反乱)

○ 구식 (Old-fashioned, old style / 旧式)

○ 진압하다 (to suppress, to put down / 鎮圧する)

○ 상인 (Merchant, trader / 商人)

 

그리고 곧이어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라는 아주 중요한 협정이 맺어집니다. 이름이 너무 길고 어렵죠? 이 협정은 중국인들이 조선에 와서 자유롭게 살고 장사할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인정한 협정이에요. 이 협정 덕분에 정말 많은 중국인들이 조선으로 이주해 상업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기 시작했어요. 일반적으로 이때를 한국 화교의 시작점으로 봅니다.

 

○ 협정 (Agreement, pact / 協定)

 

네! 이렇게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드디어 많은 수의 중국인들이 조선으로 이주해서 중국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한국 화교로서 자리잡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때 정착한 화교들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다른 나라에 정착한 화교들과 달리 이 시기에 조선에 정착한 화교는 무려 80~90%가 중국 산둥성 출신이라는 거예요. 산둥성은 중국의 북동쪽 지역입니다. 왜 조선에 정착한 화교들은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었던 걸까요? 네, 맞습니다. 아주 간단한 이유인데, 그건 바로 산둥성이 조선과 가장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너무 단순하죠?

 

그런데 이건 정말 중요한 사실이에요. 다들 아시는 것처럼, 중국은 엄청나게 큰 나라잖아요? 그리고 지역마다 기후도 크게 다르죠. 그러다 보니 중국은 지역마다 음식 스타일이 많이 다른 걸로도 유명하죠. 처음에 말씀드린 대로, 한국의 중화요리는 한국에 정착한 화교들의 의해 발전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중화요리는 거의 대부분이 산둥식 요리에 기반을 두게 되었죠. 참고로 이 산둥 요리를 중국어로는 ‘루차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이렇듯, 한국의 중화요리가 산둥 요리, 즉 루차이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건,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정착한 화교들이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이해가 되실까요?

 

○ 기후 (Climate / 気候)

 

2. 중화 요릿집의 등장 18:28

 

네!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조선에 이주한 화교들은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조선 사회에 정착했습니다. 이들은 주로 조선에서 물건을 팔거나 농사를 지었고, 또는 노동자로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이처럼 상업을 했던 화교를 '화상', 농사를 지은 화교를 '화농', 노동자로 일했던 화교를 '화공'이라고 부르기도 해요. 그런데 이 외에, 화교들이 주된 생계 수단으로 삼았던 분야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음식을 파는 요식업이었죠. 1882년부터 조선으로 이주하기 시작한 화교들 중 일부가 조선에서 중화 요릿집, 즉 중국 요릿집을 개업하여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이 바로 한국 중화 요리의 시작인 셈이죠. 참고로 한국에서는 중화 요릿집, 즉 중국 요릿집을 그냥 중국집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요. 일본 요릿집이나 인도 요릿집을 일본집, 인도집 등으로 부르는 일은 없는데, 거의 유일하게 중화 요릿집만 중국집이라고 불러요. 한국인들이 중화 요릿집을 얼마나 친숙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죠.

 

○ 생계를 유지하다 (to make a living, to support oneself / 生計を維持する)

○ 요식업 (Restaurant business, food service industry / 料飲業、外食産業)

○ 개업 (Opening of business / 開業)

 

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당시 이런 중화 요릿집들은 주로 지금의 서울과 인천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서울은 조선의 수도였으니, 이곳에 중화 요릿집이 많은 건 납득이 되는데요. 그런데 왜 인천에 중화 요릿집이 많았던 걸까요? 그건 바로, 인천이 1883년에 개항장이 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개항장이라는 건 외국과 무역을 할 수 있도록 개방된 항구를 말해요. 당시 조선은 인천 외에도 원산과 부산이라는 곳도 개항장으로 지정하여 외국인들이 자유롭게 거주하고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런데 원산과 부산은 중국으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주로 인천에 정착하게 되었던 거죠. 참고로 당시 인천에는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일본인, 서양인들도 많이 거주했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자연스럽게 중화 요릿집도 인천을 중심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거죠. 이해가 되실까요?

 

○ 개항장 (Open port / 開港場)

○ 지정하다 (to designate, to specify / 指定する)

 

이러한 중화 요릿집이 정확히 언제 처음 등장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기록을 보면, 1906년에 이미 인천에 꽤 많은 수의 중화 요릿집이 운영되고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여러분,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등장한 중화 요릿집들이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한국의 일반적인 중국집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거예요. 20세기 초에 운영된 중화 요릿집은 대부분 고급 요릿집이었습니다. 지금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식사하러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죠. 당시 중화 요릿집은 주로 일본인이나 부유한 조선인, 그리고 외국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고급스러운 식당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중화 요릿집에서 결혼식 같은 잔치를 벌이는 경우도 많았죠. 지금과는 많이 다른 풍경이죠? 참고로 당시에는 중화 요릿집을 지금처럼 ‘중화 요릿집’이나 ‘중국 요릿집’이라고 부르지 않고, 주로 ‘청 요릿집’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청나라 요릿집’이라는 뜻이죠. 정리하자면, 20세기 초에 등장한 ‘청 요릿집’들은 지금과 같은 일반적인 중국집이 아니라, 부유한 사람들이 주로 방문하는 고급 음식점이었다고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

 

○ 부담 없이 (Without burden, freely / 気軽に、負担なく)

○ 부유하다 (to be wealthy, to be affluent / 富裕だ)

 

그런데 여기서 궁금하신 분들이 있으실 것 같아요. 20세기 초 ‘청 요릿집’에서도 지금 한국 중국집에서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을 팔고 있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당시 청 요릿집에서는 지금과 같은 짜장면을 팔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도 ‘짜장면’이라는 음식을 팔긴 했습니다. 하지만 이건 지금의 짜장면이 아니라, 중국 산둥성의 ‘작장면’이라는 요리에 가까웠어요. 중국어로는 ‘자장몐’이라고 부르는 이 ‘작장면’은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지금의 짜장면의 원조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작장면’은 지금의 짜장면과 많은 부분에서 달랐습니다. 작장면과 짜장면 모두 면 위에 볶은 소스를 얹어서 먹는 음식이지만, 한국식 짜장면은 검은색과 단맛이 강한 반면, 중국의 작장면은 단맛보다 짠맛이 강하고 색깔도 갈색에 가까웠죠.

 

그리고 짜장면은 당시 조선인들이 즐겨 먹는 음식도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한국에서 중국집을 ‘짜장면집’이라고 부를 정도로, ‘짜장면’은 중국집을 대표하는 음식이 되었는데요. 1930년대, 40년대까지 조선에서는 중화 요릿집을 ‘짜장면집’이 아니라 ‘우동집’ 또는 ‘호떡집’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 이 당시 중화 요릿집의 대표 메뉴는 짜장면이 아닌 우동과 호떡이었던 거예요. 참고로 이 당시에 중국집에서 팔았던 우동은 중국의 ‘다루몐’이라는 음식과 비슷한 음식이었을 거라고 추정됩니다. 그리고 호떡은 지금 한국의 대표 길거리 음식으로 자리 잡은 음식과 같은 음식인데요. 이 시기에도 저렴한 가격 때문에 조선인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합니다.

 

○ 길거리 음식 (Street food / 屋台料理、ストリートフード)

 

이렇듯 1930년대, 40년대에는 짜장면이 아닌 중국 우동이나 호떡이 중국집을 대표하는 음식이었는데요. 그렇다면 도대체 지금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짜장면은 언제 등장한 걸까요? 사실 짜장면의 탄생에는 여러 가지 이 있어요. 가장 유명한 건, 1912년 인천 차이나타운의 '공화춘'이라는 중국집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중국 산둥 지방의 '자장몐'을 한국인 입맛에 맞게 바꿔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정설로 받아들여져 왔죠. 하지만 이 이야기를 100% 믿기에는 조금 애매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우선,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당시 공화춘을 포함한 중화 요릿집들은 기본적으로 고급 요릿집이었습니다. 가난한 노동자가 주 고객이 아니었죠. 물론 1920년대, 30년대가 되면 중화 요릿집에서도 가난한 서민들을 위한 요리를 판매하기는 합니다. 하지만 1912년이라는 이른 시기에, 고급 중화 요릿집에서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해 굳이 요리를 개발했다는 건 조금 어색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한국인들이 즐겨 먹는 짜장면의 핵심은 달달한 맛이 나는 '춘장'이라는 소스인데요. 이 춘장은 '왕송산'이라는 한국 화교가 1948년에 발명한 소스예요. 짜장면의 원조인 작장면에 사용한 소스는 이 춘장과는 많이 달랐죠. 따라서 한국이 해방되기 전에는 지금과 같은 짜장면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해가 되실까요?

 

○ 설 (Theory, hypothesis / 説)

○ 정설 (Established theory, accepted view / 定説)

○ 애매하다 (to be ambiguous, to be vague / 曖昧だ)

○ 춘장 (Chunjang / 春醤)

Explanation:

A dark, savory, and slightly sweet fermented black bean paste, primarily used in Korean Chinese cuisine. It's the key ingredient for 짜장면 (Jajangmyeon), giving the noodles their distinct black color and rich flavor. While it originates from Chinese soybean pastes, the Korean version has evolved to have a unique taste profile.

説明:

韓国式中華料理で主に使用される、黒くて香ばしく、ほのかに甘い発酵黒豆味噌。チャジャン麺の主要な材料であり、麺に独特の黒色と豊かな風味を与える。中国の豆味噌に由来するが、韓国のものは独自の味に変化している。

○ 발명하다 (to invent / 発明する)

 

정리하자면, 해방 전까지 한국에서 짜장면은 지금처럼 인기 있는 음식이 아니었고, 지금 같은 느낌의 음식도 아니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때는 오히려 짜장면 대신 중국 우동이 훨씬 많은 인기를 끌었다, 라고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3. 중국집과 짜장면의 대중화 29:08

 

네! 지금까지 한국 중화 요리의 시작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요.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해방 전까지 한국에 있었던 중화 요릿집은 부유한 사람들이 방문하거나, 결혼식 같은 날에 방문하는 고급 음식점이었어요. 그러면 대체 한국에서 중화 요릿집은 언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된 걸까요? 그리고 언제부터 짜장면은 한국인의 사랑을 받는 요리가 된 걸까요?

 

중국집과 짜장면의 대중화를 이해하려면, 다시 한국 화교의 역사를 조금 살펴봐야 합니다. 해방 후 1950년대가 되면, 한국 화교들은 큰 시련을 겪게 됩니다. 이 시기에 한국에서는 화교들을 저격한 여러 정책이 시행되었기 때문이죠. 왜 당시 한국은 화교를 저격한 정책을 시행한 걸까요? 당시 한국 정부는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한국인들이 더 많은 자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한국 내에 있는 외국인들이 자본을 축적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이런 흐름에서 한국 정부는 국내에 있는 외국인들의 경제 활동을 견제하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이때 한국 내에서 큰 자본을 가지고 있던 외국인은 대부분 한국 화교들이었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정책은 자연스럽게 화교를 저격한 정책이 되었죠.

 

대중화 (Popularization, mass dissemination / 大衆化)

○ 시련을 겪다 (to undergo an ordeal, to experience hardship / 苦しみを味わう)

○ 저격하다 (to target, to aim for / 狙う)

○ 자본 (Capital / 資本)

축적하다 (to accumulate, to hoard / 蓄積する)

 

이런 상황 속에서, 농업과 상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던 많은 화교들이 요식업에 뛰어들게 됩니다. 농업과 상업 분야에서는 한국 정부의 견제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죠. 이로 인해 1950년대 이후에 화교가 운영하는 중국 요릿집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중국집의 증가와 함께 짜장면의 인기도 높아지기 시작합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1948년에 춘장이라는 소스가 개발되었는데요. 많은 중국집에서 춘장을 활용한 짜장면을 팔게 되었고, 이것이 금방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거죠. 생각해 보면, 정말 짜장면만큼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요리도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면 요리를 잘 안 먹어서 짜장면도 자주 먹지는 않는데, 그런 저도 가끔 짜장면이 정말 먹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리고 춘장의 개발 외에도 짜장면의 인기에 영향을 준 요소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미국이에요. 갑자기 왜 미국이 등장하는 걸까요? 아시는 분도 있겠지만, 짜장면의 면은 밀가루로 만듭니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한국은 밀농사를 많이 짓는 나라가 아니었어요. 쌀농사를 주로 지었죠. 그런데 1950년대에 미국은 가난한 한국에게 이런 저런 물품을 지원해 주었고, 그중 하나가 바로 밀가루였습니다. 미국은 한국에게 무상으로 많은 양의 밀가루를 원조해 주었어요. 그리고 당시 한국은 인구에 비해 쌀 생산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에서는 가정과 식당에서 밀가루를 사용할 것을 장려하기도 했죠. 이런 이유로 인해 중국집에서는 미국의 밀가루를 사용한 짜장면을 저렴하게 많이 판매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많은 한국인들에게 친숙한 음식으로 자리잡아 갈 수 있었던 겁니다. 이해가 되실까요?

 

○ 무상으로 (For free, without charge / 無償で)

○ 원조하다 (to aid, to assist / 援助する)

○ 장려하다 (to encourage, to promote / 奨励する)

 

이렇듯 19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며, 짜장면과 함께 중국집은 한국인들의 생활 속에 자리잡아 가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한국에서는 ‘짜장면’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서민들의 음식’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는데요. 짜장면이 한국의 서민 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이 숨어 있습니다. 참고로 1960년대 중반에 미국의 원조가 중단되자 밀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짜장면의 가격이 많이 상승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그때는 이미 짜장면이 한국 서민들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았기 때문에 정부에서 짜장면 값을 단속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답니다. 그 정도로 짜장면은 한국인들에게 중요한 음식이 되어 버린 거죠.

 

서민 (Ordinary people, common people / 庶民)

단속하다 (to crack down on, to regulate / 取り締まる)

 

4. 짜장면의 의미 34:55

 

네! 마지막으로 한국인에게 있어 짜장면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 싶습니다. 방금 말씀드린 것처럼, 1950년대와 60년대를 거치며 짜장면은 한국인의 생활에서 빼 놓을 수 없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중화 요리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에게 짜장면은 단순히 싸고 맛있는 음식, 그 이상의 의미로 느껴지는 것 같아요. 왜일까요?

 

이 이유를 알려면 1970년대와 80년대로 돌아가봐야 합니다. 당시 한국은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전에 제가 다른 에피소드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 시기에 한국은 중공업을 기반으로 한 무역에 집중하여 나라의 경제를 빠르게 성장시키고 있었죠. 하지만 나라의 경제가 성장하면 반드시 따라오는 것이 있죠? 바로 물가 상승입니다. 이 시기에 한국의 물가가 급속도로 오르기 시작했고, 이와 함께 짜장면의 값도 많이 오르게 돼요. 그렇다고 말도 안 되게 비싼 음식이 된 건 아니지만, 더이상 50년대, 60년대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게 된 거죠.

 

○ 중공업 (Heavy industry / 重工業)

○ 무역 (Trade / 貿易)

○ 물가 상승 (Price increase, inflation / 物価上昇)

 

그래서 이 시기에 짜장면은 새로운 별명을 얻게 됩니다. 바로 “졸업식이나 입학식에 먹는 음식”이 된 거예요. 졸업식과 입합식은 학생들에게, 그리고 부모님에게도 정말 중요한 날이죠? 이런 기쁜 날에 부모님이 아이의 손을 잡고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한 그릇씩 먹는 게 일종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당시 짜장면은 아주 저렴한 음식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비싼 음식도 아니었기 때문에, 가족끼리 축하할 만한 일이 있을 때 즐거운 마음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안성맞춤이었던 거죠. 그래서 ‘짜장면’이라고 하면, 가족끼리 즐거운 날에 외식을 하던 추억을 떠올리는 한국인이 꽤 있답니다. 저도 옛날, 중고등학교 입학식, 졸업식에 가족과 함께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을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 졸업식 (Graduation ceremony / 卒業式)

○ 입학식 (Entrance ceremony / 入学式)

○ 안성맞춤이다 (to be perfectly suited, to be just right / 誂え向きだ、ぴったりだ)

Explanation:

This idiom describes something that is perfectly fitting or ideally suited for a particular situation, purpose, or person, as if it were custom-made.

説明:

ある状況、目的、人物に完璧に適合している、または理想的に合っている様子を表す慣用句。まるでオーダーメイドであるかのようだ。

 

그리고 한국인은 새 집으로 이사를 가면, 이사를 마친 후 짜장면을 주문해 먹는 문화가 있는데요. 이건 짜장면이 빠르게 배달이 가능한 음식이었기 때문이에요. 물론 지금은 배달 문화가 발달해서 중국집 요리 외에도 거의 대부분의 요리가 배달이 가능하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짜장면이나 치킨, 피자 정도를 제외하면 배달이 가능한 요리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사를 마친 후에, 대충 바닥에 신문지를 깔아 놓고 짜장면이나 짬뽕을 시켜서 먹는 문화가 발달했던 거죠. 

 

○ 배달 (Delivery / 配達)

 

졸업식, 입합식, 그리고 이사, 이렇게 무언가를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는 날에 짜장면을 즐겨 먹는다는 점에서, 한국인에게 짜장면은 단순한 면 요리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과도 같은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음식인 것 같기도 합니다.

 

[엔딩]

 

네! 오늘은 여러분께 짜장면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최근 해외에서도 한국식 짜장면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이 팟캐스트를 듣고 계신 여러분께서는 한국의 짜장면을 드셔 본 적이 있으신지 궁금하네요. 짜장면과 관련된 여러분의 이야기를 스포티파이 댓글이나 리퀘스트 링크를 통해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 오늘도 저의 팟캐스트에 끝까지 함께해 주신 분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저는 다음 시간에 더 즐거운, 재미있는, 유익한 이야기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언제나 건강 관리 잘해 주시고요. 우리는 다음 시간에 봅시다. 그럼 모두 안녕!

 

Vocabulary

 

○ 원서 (Original work, original text / 原書、原典)

○ 중화 요리 (Chinese cuisine / 中華料理)

Explanation:

A broad culinary tradition originating from China, known for its diverse regional styles, cooking methods, and ingredients. It includes famous dishes like 짜장면 (Jajangmyeon) and 짬뽕 (Jjamppong) that are particularly popular in Korea, adapted to local tastes.

説明:

中国に起源を持つ幅広い料理の伝統で、多様な地域ごとのスタイル、調理法、食材で知られる。韓国で特に人気があり、現地の味覚に合わせて変化したチャジャン麺やチャンポンなどの有名料理も含まれる。

○ 이주하다 (to migrate, to relocate / 移住する)

○ 거주하다 (to reside, to live / 居住する)

○ 화교 (Overseas Chinese / 華僑)

Explanation:

Ethnic Chinese people who live outside of Greater China (mainland China, Hong Kong, Macau, and Taiwan) as permanent residents or citizens of other countries, while maintaining some cultural or ancestral ties to China.

説明:

大中華圏(中国本土、香港、マカオ、台湾)の外に住み、他の国の永住者または市民である民族的中国人。中国との文化的なつながりや祖先の繋がりを維持する。

○ 국적 (Nationality, citizenship / 国籍)

○ 취득하다 (to acquire, to obtain / 取得する)

○ 후손 (Descendant, offspring / 子孫)

○ 정착하다 (to settle down, to establish oneself / 定着する)

○ 정체성 (Identity / アイデンティティ)

○ 형성하다 (to form, to shape / 形成する)

○ 화인 (Ethnic Chinese person / 華人)

Explanation:

In a broad sense, 화인 refers to ethnic Chinese people who have migrated overseas and acquired the nationality of their country of residence, distinguishing them from 화교 who retain Chinese nationality. In a narrower sense, it refers to those who have naturalized in their country of residence but maintain cultural homogeneity with their homeland.

説明:

広い意味では、華人(かじん)は「海外へ移住した中国系の人々で、滞在国の国籍を取得した者」を指し、中国国籍を維持する華僑とは区別される概念。狭い意味では、「国籍は滞在している国に帰化したが、文化的には本国と同質性を維持する」場合を指す。

○ 명청교체기 (Ming-Qing Transition / 明清交替期)

Explanation:

This period refers to the tumultuous era in Chinese history from the mid-17th century when the Ming Dynasty fell and the Qing Dynasty rose to power. It was marked by widespread warfare, political instability, social unrest, and significant demographic changes, profoundly impacting Chinese society and culture.

説明:

17世紀半ばの明朝の滅亡と清朝の興隆に伴う中国史の激動の時代。広範な戦争、政治的不安定、社会不安、著しい人口変動が特徴で、中国社会と文化に深い影響を与える。

○ 엄밀하다 (to be strict, to be rigorous / 厳密だ)

○ 상업 (Commerce, business / 商業)

○ 회관 (Guildhall, assembly hall / 会館)

○ 영향력을 행사하다 (to exert influence / 影響力を行使する)

○ 배타적 (Exclusive, exclusionary / 排他的だ)

○ 중화 사상 (Sinocentrism / 中華思想)

Explanation:

A traditional Chinese worldview that regarded China as the cultural, political, and economic center of the world, with other nations being considered peripheral or subordinate. This ideology influenced China's foreign relations and its perception of itself as the 'Middle Kingdom.'

説明:

中国を世界の文化的、政治的、経済的中心と見なし、他の国々を周辺的または従属的と捉える伝統的な中国の世界観。この思想は中国の対外関係や、自らを「中華」と見なす認識に影響を与える。

○ 우대 정책 (Preferential policy / 優遇政策)

○ 동화되다 (to be assimilated / 同化する)

○ 더디다 (to be slow, to be sluggish / 遅い、捗らない)

○ 임오군란 (Imo Incident / 壬午軍乱)

Explanation:

A military revolt that occurred in Korea in 1882 during the Joseon Dynasty. It was primarily instigated by disgruntled soldiers of the old army who were upset about their low pay, discrimination compared to modernized forces, and poor living conditions. The rebellion quickly escalated, leading to attacks on government officials, Japanese legation members, and eventually prompting military intervention from both Qing China and Japan.

説明:

1882年、朝鮮王朝で発生した軍事反乱。主に、低賃金、近代化された軍隊との差別、劣悪な生活環境に不満を抱いた旧式軍の兵士たちによって引き起こされる。反乱は急速に拡大し、政府高官や日本公使館員への攻撃につながり、最終的に清と日本の両国からの軍事介入を招く。

○ 군사 반란 (Military rebellion / 軍事反乱)

○ 구식 (Old-fashioned, old style / 旧式)

○ 진압하다 (to suppress, to put down / 鎮圧する)

○ 상인 (Merchant, trader / 商人)

○ 협정 (Agreement, pact / 協定)

○ 기후 (Climate / 気候)

○ 생계를 유지하다 (to make a living, to support oneself / 生計を維持する)

○ 요식업 (Restaurant business, food service industry / 料飲業、外食産業)

○ 개업 (Opening of business / 開業)

○ 개항장 (Open port / 開港場)

○ 지정하다 (to designate, to specify / 指定する)

○ 부담 없이 (Without burden, freely / 気軽に、負担なく)

○ 부유하다 (to be wealthy, to be affluent / 富裕だ)

○ 길거리 음식 (Street food / 屋台料理、ストリートフード)

○ 설 (Theory, hypothesis / 説)

○ 정설 (Established theory, accepted view / 定説)

○ 애매하다 (to be ambiguous, to be vague / 曖昧だ)

○ 춘장 (Chunjang / 春醤)

Explanation:

A dark, savory, and slightly sweet fermented black bean paste, primarily used in Korean Chinese cuisine. It's the key ingredient for 짜장면 (Jajangmyeon), giving the noodles their distinct black color and rich flavor. While it originates from Chinese soybean pastes, the Korean version has evolved to have a unique taste profile.

説明:

韓国式中華料理で主に使用される、黒くて香ばしく、ほのかに甘い発酵黒豆味噌。チャジャン麺の主要な材料であり、麺に独特の黒色と豊かな風味を与える。中国の豆味噌に由来するが、韓国のものは独自の味に変化している。

○ 발명하다 (to invent / 発明する)

○ 대중화 (Popularization, mass dissemination / 大衆化)

○ 시련을 겪다 (to undergo an ordeal, to experience hardship / 苦しみを味わう)

○ 저격하다 (to target, to aim for / 狙う)

○ 자본 (Capital / 資本)

○ 축적하다 (to accumulate, to hoard / 蓄積する)

○ 무상으로 (For free, without charge / 無償で)

○ 원조하다 (to aid, to assist / 援助する)

○ 장려하다 (to encourage, to promote / 奨励する)

○ 서민 (Ordinary people, common people / 庶民)

단속하다 (to crack down on, to regulate / 取り締まる)

○ 중공업 (Heavy industry / 重工業)

○ 무역 (Trade / 貿易)

○ 물가 상승 (Price increase, inflation / 物価上昇)

○ 졸업식 (Graduation ceremony / 卒業式)

○ 입학식 (Entrance ceremony / 入学式)

○ 안성맞춤이다 (to be perfectly suited, to be just right / 誂え向きだ、ぴったりだ) Explanation: This idiom describes something that is perfectly fitting or ideally suited for a particular situation, purpose, or person, as if it were custom-made. 説明: ある状況、目的、人物に完璧に適合している、または理想的に合っている様子を表す慣用句。まるでオーダーメイドであるかのようだ。

○ 배달 (Delivery / 配達)

References

김동하. (2022). 17∼19세기 베트남 명향사와 중화회관에 관한 연구. 중국학, 78, 479-503.

박미향. (2024, 3월 1일). 입학식 때 왜 짜장면?…목포 '1965년 가격표' 보며 알아봤다. 한겨레.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30341.html

어기선. (2022, 5월 26일). 우리나라에서 화교가 크게 위축된 이유. 파이낸셜리뷰. http://www.financialr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187

엄주엽. (2017, 7월 27일). 중국집, 1920년대 대중화… 100년간 인기. 문화일보. https://www.munhwa.com/article/11044239

이재휘. (2019, 8월 10일). 중국엔 없다는 짜장면의 역사 돋보기. 사이드뷰. https://www.sideview.co.kr/news/articleView.html?idxno=2833

이정희. (2018). 화교가 없는 나라. 동아시아.

주희풍. (2024). 한국 중화요리의 탄생: 음식에 담긴 화교의 삶과 역사.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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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브라더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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