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 김대건 신부: 한국 최초의 사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Go back
#103 김대건 신부: 한국 최초의 사제는 어떻게 탄생했을까?
브라더윤
2026-09-15

Father Kim Dae-geon: How Did Korea's First Priest Come to Be?

金大建神父:韓国初の司祭はどのように誕生したのか?

Cha Kim Dae-geon: Linh mục đầu tiên của Hàn Quốc đã ra đời như thế nào?

 

[인트로] (00:16)

 

네! 여러분, 안녕하세요? 브라더윤의 한국어 팟캐스트 시간입니다.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늘은 9월 18일 금요일에 이 팟캐스트를 녹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마 벌써 눈치 채신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네. 제가 마이크를 바꿨습니다. 원래 쓰던 마이크도 그렇게 나쁜 마이크는 아니었는데, 조금 더 좋은 음질로 녹음을 하고 싶어서 새 마이크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없는 살림에 꽤 비싼 마이크를 구입하게 된 만큼, 앞으로 이 마이크로 더 좋은 팟캐스트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눈치채다 (To notice / 気づく / Nhận ra)

음질 (Sound quality / 音質 / Chất lượng âm thanh)

없는 살림 (Tight budget / 苦しい家計 / Hoàn cảnh eo hẹp)

 

[주제 소개] (01:13)

 

네! 그럼 바로 오늘의 주제를 소개해 보려고 하는데요. 여러분은 혹시 믿고 계신 종교가 있으신가요? 한국에는 나라가 정한 종교, 즉 국교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죠. 2015년 조사를 보면 개신교를 믿는 사람이 가장 많고, 그다음이 불교, 세 번째가 천주교, 즉 가톨릭이었어요. 그리고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도 절반이 넘었습니다.

 

국교 (State religion / 国教 / Quốc giáo)

개신교 (Protestantism / プロテスタント / Đạo Tin Lành)

불교 (Buddhism / 仏教 / Phật giáo)

천주교 (Catholicism / カトリック / Công giáo)

 

오늘은 이 가운데 천주교와 관련된 한 사람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바로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신부, 김대건입니다. 종교와 관련된 내용이긴 하지만, 종교 자체보다는 김대건이라는 한 사람의 삶에 집중해서 들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최초의 한국인 신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신부 (Priest / 神父 / Linh mục)

 

지금부터 김대건 신부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1. 사제가 없는 나라 (02:52)

 

자! 그럼 김대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하는데요. 그 전에 먼저, 그가 태어났을 때 조선이 어떤 곳이었는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김대건은 1821년, 충청도의 솔뫼라는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조선에는 이미 천주교가 들어와 있었는데요. 18세기 후반, 중국을 오가던 사람들을 통해 천주교 책이 먼저 들어왔고, 1784년에는 이승훈이라는 사람이 중국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세례는 천주교 신자가 되는 의식을 말해요. 이렇게 조선에도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죠.

 

세례 (Baptism / 洗礼 / Phép rửa tội)

의식 (Ritual / 儀式 / Nghi lễ)

 

그런데 1821년 당시, 조선에는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있었지만 천주교 사제, 즉 신부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믿는 사람은 있는데 신부가 없다니, 이상하죠? 이건 나라에서 천주교를 강하게 금지하고, 믿는 사람들을 벌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억누르고 괴롭히는 것을 '박해'라고 해요.

 

박해 (Persecution / 迫害 / Sự bách hại)

 

그런데 여러분, 조선은 왜 이렇게까지 천주교를 싫어했던 걸까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사 문제였습니다. 천주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못하게 했거든요. 그런데 유교의 나라 조선에서 제사는 부모와 조상에 대한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의식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지배층은 제사를 지내지 않는 천주교 신자들을 보며,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나 마찬가지라고 보았던 거죠. 이해가 되시나요?

 

제사를 지내다

  • To hold a memorial rite for one's ancestors by setting out food and bowing before them. In Confucian Joseon, it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rituals for honoring one's parents and ancestors.
  • 亡くなった祖先のために食べ物を供え、礼をして祀る儀式を行うこと。儒教の国だった朝鮮では、親と祖先を敬う最も大切な儀式の一つだった。
  • Tổ chức nghi lễ tưởng nhớ tổ tiên bằng cách bày thức ăn và cúi lạy trước linh vị. Ở Joseon, một quốc gia theo Nho giáo, đây là một trong những nghi lễ quan trọng nhất để tôn kính cha mẹ và tổ tiên.

짐승 (Beast / 獣 / Cầm thú)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천주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고 가르쳤는데요.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이건 나라의 질서를 흔드는 위험한 사상이었죠. 뿐만 아니라 여기에 정치적인 문제까지 얽혀 있었습니다.

 

평등하다 (Equal / 平等だ / Bình đẳng)

신분제 (Class system / 身分制度 / Chế độ đẳng cấp)

사상 (Ideology / 思想 / Tư tưởng)

얽히다 (To be intertwined / 絡み合う / Đan xen)

 

1800년, 당시 왕이었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겨우 열한 살이었던 순조가 왕이 됩니다. 왕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왕실, 즉 왕 집안의 가장 어른인 정순왕후가 대신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죠. 그런데 당시 천주교를 믿거나 공부하던 사람들 중에는, 정순왕후 쪽과 반대편에 선 정치 세력학자들이 많았어요. 그러니 나라를 이끌고 있던 정순왕후 쪽에서는 천주교를 믿던 사람들을 벌하면 자신들의 정치적인 적들까지 한꺼번에 몰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이런 이유들이 겹쳐서 1801년, 신유박해라는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왕실 (Royal family / 王室 / Hoàng gia)

세력 (Faction / 勢力 / Thế lực)

학자 (Scholar / 学者 / Học giả)

 

이 ‘신유박해’ 때 약 100명이 처형되고, 400명이 유배를 갔습니다. 유배는 죄인을 먼 곳으로 보내 살게 하는 벌을 말해요. 그리고 당시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던 단 한 명의 신부, 중국인 주문모 신부도 이때 목숨을 잃습니다. 참고로 이렇게 자신의 신앙을 지키다 목숨을 잃는 것을 '순교'라고 해요. 그 뒤로 조선은 천주교를 믿는 사람은 있지만 사제, 즉 신부는 없는 나라가 됩니다. 이후 그 상태가 무려 32년이나 이어지게 되죠.

 

처형하다 (To execute / 処刑する / Hành quyết)

목숨을 잃다 (To lose one's life / 命を落とす / Mất mạng)

신앙 (Faith / 信仰 / Đức tin)

순교 (Martyrdom / 殉教 / Sự tử đạo)

 

그런데 여러분, 신부가 없으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그냥 믿는 사람들만 있어도 되는 것 아닐까요? 천주교에서는 오직 신부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의식들이 있는데요. 앞에서 말씀드린 세례가 그렇고, 죽음을 앞둔 사람이 받는 마지막 의식도 그렇습니다. 신부가 없으면 이런 의식을 치를 수 없었으니, 반쪽짜리 신자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실제로 김대건의 할아버지와 삼촌도 끝내 이런 의식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신자들은 나라에서 천주교를 금지하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몰래 중국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천주교 신부들이 활동하고 있었거든요. 조선의 신자들은 이들에게 조선에도 신부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계속 보내고 있었죠.

 

김대건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4대째 천주교를 믿어 온 김대건의 집안 역시, 박해 속에서 큰 고난을 겪고 있었죠. 증조할아버지, 즉 할아버지의 아버지는 감옥에서 10년을 버티다 세상을 떠났고, 다른 집안 어른들도 천주교를 믿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다 또다시 박해가 일어나자, 김대건의 가족은 결국 고향 솔뫼를 떠나 지금의 서울인 한양으로 올라왔고, 이후 천주교 신자들이 나라의 눈을 피해 산속에 모여 살던 마을로 들어갑니다. 이런 마을을 '교우촌'이라고 불렀는데요. 바로 이 교우촌에서, 첫 조선인 사제 김대건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2. 세 번째 소년 (09:54)

 

1830년대가 되면, 드디어 조선에 사제를 보내기 위한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당시 조선이 있는 동아시아 지역에서 활동하던 여러 선교 단체들이 있었는데, 그중 ‘파리외방전교회’라는 프랑스의 단체가 조선의 선교를 맡게 됩니다. 선교는 자기 종교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는 활동을 말해요. 그리고 1834년에 중국인 신부가 먼저 조선에 들어오고, 1836년 1월에는 모방이라는 프랑스인 신부가 조선 땅을 밟습니다.

 

시도 (Attempt / 試み / Nỗ lực)

선교 (Missionary work / 宣教 / Truyền giáo)

 

그런데 서양인이 조선에 몰래 들어오는 게 쉬웠을까요? 얼굴만 봐도 바로 들통이 났겠죠. 그래서 모방 신부는 한밤중에 국경 성벽 아래에 난 작은 구멍으로 몰래 들어왔고, 조선에 들어온 뒤에는 조선의 풍습을 이용했습니다. 당시 조선에서는 부모의 장례를 치르는 자식이 밖에 나갈 때 '방립'이라는, 얼굴이 가려질 만큼 아주 큰 삿갓을 쓰고 다녔거든요. ‘삿갓’은 조선 시대에 쓰던 모자를 말합니다. 모방 신부는 이 방립을 쓰고 얼굴을 감춘 채 한양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들통나다 (To be found out / ばれる / Bị lộ)

국경 (Border / 国境 / Biên giới)

풍습 (Custom / 風習 / Phong tục)

장례를 치르다 (To hold a funeral / 葬儀を行う / Tổ chức tang lễ)

삿갓 (Conical hat / 笠 / Nón tre)

 

자! 이렇게 어렵게 조선에 들어온 모방 신부에게는 아주 중요한 계획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조선 사람을 신부로 키우는 것이었어요. 서양인은 조선에 들어오기도 어렵고, 들어와도 숨어 살아야 하잖아요. 그러면 사제로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 데 방해를 받을 수밖에 없죠. 하지만 조선 사람이 신부가 된다면 어떨까요? 상대적으로 원활하게 사제로서 활동할 수 있겠죠?

 

원활하다 (Smooth / 円滑だ / Suôn sẻ)

 

그래서 모방 신부는 조선인 신자들의 추천을 받아, 신부가 되기 위해 공부할 학생, 즉 예비 신학생을 뽑게 됩니다. 그때 뽑힌 두 명의 소년이 바로 최양업과 최방제라는 소년들이었어요. 이상하죠? 김대건은 어디 있을까요? 원래 모방 신부는 두 명의 신학생만 뽑을 생각이었어요. 그리고 최양업과 최방제, 이 두 소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소년을 찾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원래 모방 신부의 계획에 김대건은 없었던 겁니다.

 

예비 (Prospective / 予備 / Dự bị)

신학생 (Seminarian / 神学生 / Chủng sinh)

 

그런데 몇 달 뒤, 모방 신부의 생각이 바뀝니다. 조선에서 몇 번 위험한 일을 겪으면서 걱정이 생긴 거죠. 만약 자신이 조선에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자신을 찾기 위해 다시 박해가 시작될 테고, 그러면 더 이상 학생들을 외국으로 보낼 수 없을 테니까요. 그래서 모방 신부는 만일을 대비해 한 명의 예비 신학생을 더 뽑기로 합니다.

 

만일을 대비하다 (To prepare for the worst / 万一に備える / Đề phòng bất trắc)

 

바로 이때 조선인 신자들이 한 소년을 떠올리는데요. 그 소년이 바로 김대건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김대건은 마지막으로 뽑힌 소년이었던 거죠.

 

1836년 7월, 김대건은 모방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안드레아'라는 세례명을 받습니다. 세례명은 세례를 받을 때 새로 받는 이름을 말해요. 그리고 그해 12월, 이 세 명의 10대 소년들은 가족의 품을 떠나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먼 길에 오르게 됩니다. 이들이 향한 곳은 조선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낯선 도시, 바로 마카오였습니다.

 

품을 떠나다 (To leave home / 親元を離れる / Rời vòng tay gia đình)

 

3. 마카오의 소년들 (15:02)

 

그런데 왜 하필 마카오였을까요? 마카오는 중국 남쪽 끝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요. 당시에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자유롭게 장사하고 종교 활동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국이나 조선과 달리, 천주교를 믿고 공부하는 게 자유로웠어요. 게다가 조선을 맡은 파리외방전교회의 동아시아 본부도 바로 이 마카오에 있었습니다. 숨어 지낼 필요 없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곳이었던 거죠.

 

본부 (Headquarters / 本部 / Trụ sở chính)

 

그럼 조선에서 마카오까지는 어떻게 갔을까요? 세 소년은 한겨울에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들어갔는데요. 원래는 중간에 배를 타고 바닷길로 내려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었어요. 그런데 길을 안내하던 중국인들이 바다를 무서워했다고 합니다. 결국 세 소년은 끝까지 걸어서 가야 했어요. 조선에서 마카오까지 가는 길은 3,000킬로미터가 훌쩍 넘었습니다. 그렇게 1837년 6월, 조선을 떠난 지 여섯 달 만에 소년들은 마침내 마카오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진짜 어려움은 그때부터였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았던 거예요. 당시 천주교의 공식 언어는 라틴어였고, 수업도 라틴어로 이루어졌거든요. 그런데 소년들이 할 줄 아는 라틴어는 기도문 몇 개와 간단한 인사말 정도였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뒤처진 사람이 김대건이었어요. 다른 소년들보다 네 달이나 늦게 뽑혔으니, 배운 시간도 그만큼 짧았던 거죠.

 

뒤처지다 (To fall behind / 後れを取る / Tụt lại phía sau)

 

그래서 스승 신부들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립니다. 프랑스어와 중국어가 함께 적힌 사전을 나눠 준 거예요. 소년들이 한자를 조금은 알았으니, 한자를 징검다리 삼아 라틴어를 배우게 한 거죠. 여러분도 지금 한국어를 공부하고 계시니, 이 소년들의 막막함이 조금은 짐작되실 것 같네요.

 

징검다리 (Stepping stone / 足がかり / Cầu nối)

막막하다 (At a loss / 途方に暮れる / Mờ mịt)

 

이 당시 세 명의 조선인 신학생들을 가르쳤던 신부들은 많은 편지를 남겼는데요. 이 편지를 보면 꽤 흥미로운 부분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건, 김대건에 대한 스승들의 평가가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다는 거예요. 이 편지에 묘사된 김대건은 우선 늘 아픈 소년이었습니다. 김대건은 늘 배가 아프고, 머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팠다고 해요. 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에 비해 판단력이 좋지 않다는 말까지 덧붙여져 있었습니다. 훗날 최초의 조선인 사제가 되는 김대건이, 이때까지만 해도 동기들 중 가장 뒤처지는 학생이었던 겁니다.

 

눈길을 끌다 (To catch one's eye / 目を引く / Thu hút sự chú ý)

동기 (Classmate / 同期 / Bạn đồng môn)

 

재미있는 편지도 있어요. 스승 신부가 파리에 작은 풍금이라는 악기를 보내 달라는 편지를 쓴 건데요. 조선 학생들이 변성기라 목소리가 쉬어 있고, 음도 잘 못 맞춰서 교회 노래를 가르치기 어렵다는 이유였습니다. 이 부탁을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했습니다. 아마도 조선인 신학생들이 노래에는 재능이 없었던 것 같네요. 그렇죠?

 

변성기 (Voice change / 声変わり / Tuổi vỡ giọng)

 

이렇게 세 명의 조선인 신학생들은 마카오에서 열심히 공부를 해 나갑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들에게 아주 슬픈 일이 찾아오죠. 셋 중에서 공부를 가장 잘하던 최방제가, 마카오에 도착한 지 여섯 달도 되지 않은 1837년 11월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대건과 최양업은 먼저 세상을 떠난 동기의 곁에서 눈물을 흘려야 했죠.

 

슬픈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마카오에서 지내는 사이, 조선에서는 또 한 번 큰 일이 벌어지고 있었죠. 1839년, 조선에서 또다시 큰 박해가 일어난 겁니다. 이때 김대건을 신학생으로 뽑아 준 모방 신부가 목숨을 잃었고, 김대건의 아버지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김대건은 이 소식을 언제 알게 되었을까요? 무려 3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이 시기에 조선과 마카오 사이의 연락은 사실상 거의 끊겨 있었거든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줄도 모른 채, 김대건은 낯선 땅에서 열심히 공부를 이어 가고 있었던 겁니다.

 

4.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 (21:11)

 

방금 말씀드린 1839년의 박해 이후, 조선은 다시 신부가 한 명도 없는 나라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카오에는 조선에서 큰일이 났다는 소문만 들려올 뿐, 정확한 소식은 알 수 없었죠. 그래서 마카오에 있는 신부들에게 조선의 사정을 알아보고, 신부들이 다시 조선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찾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김대건이 이 일을 맡게 됩니다.

 

사정 (Situation / 事情 / Tình hình)

 

김대건은 먼저 직접 걸어서 조선으로 들어가 보기로 합니다. 1842년 겨울, 김대건은 조선과 중국의 국경으로 향하는데요. 그곳에서 해마다 중국을 오가던 조선 사신단행렬과 마주칩니다. 조선의 신자들은 가끔 이 행렬 속에 사람을 몰래 끼워 넣어 바깥과 소식을 주고받곤 했죠. 그리고 운 좋게도, 김대건은 그 행렬 속에서 천주교 신자 한 사람을 만나게 된 겁니다.

 

사신단 (Envoy delegation / 使節団 / Phái đoàn sứ thần)

행렬 (Procession / 行列 / Đoàn người)

 

김대건은 그에게서 조선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3년 전 조선에서 큰 박해가 있었고, 자신을 뽑아 준 모방 신부뿐 아니라 자신의 아버지까지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심지어 함께 공부하고 있던 최양업의 부모는 두 분이 모두 순교했다는 이야기까지 듣게 돼요.

 

하지만 슬픔도 잠시, 김대건은 멈출 수 없었습니다. 이후 가까스로 국경을 통과해 조선 땅을 밟아 보기도 했지만 의심을 받아 곧 다시 돌아와야 했습니다.

 

가까스로 (Barely / かろうじて / Khó khăn lắm mới)

 

이렇게 김대건이 조선에 들어갈 길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무렵, 당시 조선의 선교를 책임지고 있던 사람은 프랑스 신부 페레올 주교였습니다. 주교는 한 지역의 신부들을 이끄는 사람을 말해요. 페레올 주교는 만약 자신이 조선에 들어갔다가 목숨을 잃으면, 김대건이 신부가 될 수 있게 해 줄 사람이 없어지게 될 거라고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조선에 들어가기 전에 서둘러 김대건을 신부로 만들고 싶어 했죠. 하지만 여기에는 걸림돌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규칙으로는 만 스물네 살이 되어야 신부가 될 수 있었는데, 김대건은 아직 그 나이가 안 됐거든요. 그래서 페레올 주교는 1844년 12월, 우선 김대건을 신부 바로 전 단계인 '부제'로 세웁니다.

 

주교 (Bishop / 司教 / Giám mục)

걸림돌 (Obstacle / 妨げ / Trở ngại)

부제 (Deacon / 助祭 / Phó tế)

 

그리고 1845년 1월, 부제가 된 김대건은 홀로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너 조선에 들어왔고 수도인 한양에 들어오는 데까지 성공합니다. 조선을 떠난 지 8년 만의 일이었죠. 어렵게 조선에 들어오기는 했지만, 김대건에게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습니다. 중국에서 조선에 들어올 날만 기다리던 페레올 주교를 모셔 오는 일이었죠.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육로, 즉 땅을 통해 조선에 들어오는 건 불가능해 보였어요. 그래서 김대건이 택한 건 바닷길이었습니다. 즉 바다를 통해 조선에 들어오는 길을 개척해 보기로 한 거죠. 개척은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을 처음으로 여는 것을 말해요.

 

1845년 4월, 김대건은 페레올 주교가 기다리고 있는 중국 상해로 가기 위해 한양의 마포나루에서 배를 띄웁니다. 하지만 이 배는 바다를 건너기에는 턱없이 작은 배였어요. 아니나 다를까, 김대건과 신자들이 탄 배는 폭풍을 만나 도, 도, 도 모두 잃고 바다 위를 떠돌게 됩니다. 그러다 다행히 지나가던 중국 배를 만나 가까스로 상해에 닿게 되죠. 마포나루를 떠난 지 28일 만이었습니다.

 

턱없이 (Far too / あまりにも / Quá đỗi)

아니나 다를까 (As expected / 案の定 / Quả nhiên)

(Sail / 帆 / Cánh buồm)

(Rudder / 舵 / Bánh lái)

(Oar / 櫂 / Mái chèo)

 

작은 배로 상해까지 건너는 데 성공한 김대건은, 그곳에서 드디어 페레올 주교를 만납니다. 그리고 두 달 반쯤 지난 1845년 8월 17일,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합니다. 김대건이 상해의 한 성당에서 마침내 신부가 되는 의식을 치르게 된 거예요. 이로써 최초의 조선인 신부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신부가 된 김대건은 얼마 뒤 페레올 주교를 배에 태우고 다시 조선으로 향하기 시작하죠.

 

이들이 탄 배는 또 한 번 폭풍에 밀려 제주도 근처까지 떠내려갔지만, 그래도 1845년 10월, 가까스로 조선 땅에 무사히 상륙할 수 있었어요. 열다섯 살에 조선을 떠난 지 약 9년이 지나, 그리고 신부가 된 지 두 달 만에, 김대건은 최초의 조선인 신부가 되어 조선 땅을 밟게 된 겁니다.

 

5. 김대건의 순교 (27:52)

 

조선인 최초의 신부가 되어 돌아온 김대건, 과연 그 뒤에는 어떤 일이 펼쳐졌을까요?

 

조선에 돌아온 김대건은 쉴 틈이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신부 없이 지낸 신자들을 찾아다녀야 했거든요. 그리고 1846년 2월, 김대건은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어머니를 만납니다. 열다섯 살에 집을 떠난 아들이, 약 10년 만에 신부가 되어 돌아온 거죠. 사실 김대건은 한 해 전 조선에 몰래 들어왔을 때도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지만, 그때는 일부러 만나지 않았어요. 자신이 돌아왔다는 게 알려지면 모두가 위험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보고 싶은 마음을 참아야만 했던 거죠. 약 두 달 뒤, 김대건은 약 10년 만에 재회한 어머니와 작별 인사를 하고 한양으로 떠납니다. 그리고 이것이 김대건과 어머니의 마지막 만남이었죠.

 

한양으로 돌아온 김대건에게는 새로운 일이 주어집니다. 다른 신부들이 조선에 들어올 수 있는 바닷길을 찾는 일이었어요. 이 무렵 백령도라는 섬 근처에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중국 배들이 자주 오갔는데요. 페레올 주교와 김대건 신부는 이 중국 배들을 이용하면 중국에 있는 신부들이 바다를 건너 조선에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1846년 5월, 김대건은 어부로 위장해 서해로 나갑니다. 처음에는 일이 잘 이루어지는 듯했는데, 6월 5일, 이들이 머물고 있던 한 섬에서 일이 벌어지고 맙니다.

 

위장하다 (To disguise oneself / 変装する / Cải trang)

 

그 지역을 지키던 관리가 부하들을 데리고 와서, 김대건의 배를 강제로 가져가려 한 거예요. 근처에 중국 배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이들을 살피는 데 배가 필요하다는 이유였죠. 하지만 이들은 양반처럼 보이는 김대건은 데려가지 못했고, 배에 있던 선원들을 끌고 가 이것저것 물어 봤습니다. 그리고 결국 김대건 일행이 천주교 신자일지 모른다는 단서를 잡아내었죠. 그날 밤, 서른 명 남짓한 군사들이 몰려와 김대건을 붙잡아 갔습니다.

 

관리 (Government official / 役人 / Quan lại)

단서 (Clue / 手がかり / Manh mối)

남짓하다 (A little over / 余り / Hơn một chút)

 

한양으로 끌려간 김대건은 50번이 넘는 심문을 받습니다. 심문은 죄를 밝히기 위해 캐묻는 것을 말해요. 하지만 김대건은 끝까지 함께하던 신자들의 이름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이때의 박해는 희생을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도 하네요.

 

심문 (Interrogation / 尋問 / Thẩm vấn)

희생 (Casualties / 犠牲 / Thương vong)

 

심문 끝에 조선 조정은 결국 김대건을 처형하기로 합니다. 그냥 처형하는 것이 아니라, 참수, 즉 목을 잘라 죽인 뒤 그 목을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걸어 두기로 결정했죠. 이 끔찍한 처형을 앞두고, 김대건은 조선의 신자들에게 편지를 남깁니다. 편지에는 서로 아끼며 돕고, 함께 갇혀 있는 사람들이 혹시 죽더라도 그 가족들을 잊지 말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죠.

 

당부 (Earnest request / 頼み / Lời dặn dò)

 

1846년 9월 16일, 김대건은 한양의 새남터라는 곳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의 나이 스물다섯이었고, 신부가 된 지 1년 1개월 만의 일이었죠. 이렇게 최초의 조선인 신부는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생을 마감하다 (To pass away / 生涯を閉じる / Khép lại cuộc đời)

 

김대건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조선의 천주교 박해는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1886년, 조선이 프랑스와 조약을 맺은 뒤에야 선교사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게 되죠. 그리고 김대건이 세상을 떠난 지 약 140년이 지난 1984년, 한국을 찾은 교황이 김대건을 ‘성인’으로 선포합니다. 성인은 천주교회가 믿음과 삶의 모범으로 공경하도록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람을 말해요. 신부 한 명 없는 땅에서 태어나 조선인 최초의 신부가 된 김대건이 마침내 천주교의 성인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죠.

 

조약을 맺다 (To sign a treaty / 条約を結ぶ / Ký kết hiệp ước)

성인 (Saint / 聖人 / Thánh)

선포하다 (To proclaim / 宣言する / Tuyên bố)

 

종교를 떠나서, 김대건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는 열다섯 살에 집을 떠나 수천 킬로미터를 걷고, 가족을 잃고, 몇 번이나 길이 막혔지만, 끝끝내 자신이 맡은 일을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붙잡힌 뒤에는 함께하던 사람들의 이름을 끝까지 말하지 않았죠. 김대건이라는 한 인간이 보여 준 끈기와 책임감은, 저 같은 사람은 감히 흉내 내기 어려울 것 같네요.

 

손에서 놓지 않다 (To never let go / 手放さない / Không buông bỏ)

끈기 (Perseverance / 粘り強さ / Sự kiên trì)

 

요즘은 많은 것이 너무 빠르게 바뀌고, 나에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쉽지 않은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김대건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과연 나는 무엇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가, 무엇이 정말로 나에게 중요한 것인가, 하고 말이죠. 여러분에게는 끝까지 지키고 싶은 무엇인가가 있는지 궁금해지네요.

 

[엔딩] (35:03)

 

네! 오늘은 여러분께 한국 최초의 신부, 김대건 신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어떠셨나요? 아마 여러분이 평소에 한국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신 적 없는 주제였을 것 같은데요. 오늘 이야기가 여러분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면 참 기쁠 것 같습니다.

 

네! 오늘도 저의 팟캐스트에 함께해 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저는 다음 시간에 더 재밌는 즐거운 유익한 이야기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 관리 잘해 주시기를 바라고요. 우리는 다음 시간에 봅시다. 그럼 모두, 안녕!

 

Vocabulary

 

[인트로]

눈치채다 (To notice / 気づく / Nhận ra)

음질 (Sound quality / 音質 / Chất lượng âm thanh)

없는 살림 (Tight budget / 苦しい家計 / Hoàn cảnh eo hẹp)

 

[주제 소개]

국교 (State religion / 国教 / Quốc giáo)

개신교 (Protestantism / プロテスタント / Đạo Tin Lành)

불교 (Buddhism / 仏教 / Phật giáo)

천주교 (Catholicism / カトリック / Công giáo)

신부 (Priest / 神父 / Linh mục)

 

1. 사제가 없는 나라

세례 (Baptism / 洗礼 / Phép rửa tội)

의식 (Ritual / 儀式 / Nghi lễ)

박해 (Persecution / 迫害 / Sự bách hại)

제사를 지내다

  • To hold a memorial rite for one's ancestors by setting out food and bowing before them. In Confucian Joseon, it was one of the most important rituals for honoring one's parents and ancestors.
  • 亡くなった祖先のために食べ物を供え、礼をして祀る儀式を行うこと。儒教の国だった朝鮮では、親と祖先を敬う最も大切な儀式の一つだった。
  • Tổ chức nghi lễ tưởng nhớ tổ tiên bằng cách bày thức ăn và cúi lạy trước linh vị. Ở Joseon, một quốc gia theo Nho giáo, đây là một trong những nghi lễ quan trọng nhất để tôn kính cha mẹ và tổ tiên.

짐승 (Beast / 獣 / Cầm thú)

평등하다 (Equal / 平等だ / Bình đẳng)

신분제 (Class system / 身分制度 / Chế độ đẳng cấp)

사상 (Ideology / 思想 / Tư tưởng)

얽히다 (To be intertwined / 絡み合う / Đan xen)

왕실 (Royal family / 王室 / Hoàng gia)

세력 (Faction / 勢力 / Thế lực)

학자 (Scholar / 学者 / Học giả)

처형하다 (To execute / 処刑する / Hành quyết)

목숨을 잃다 (To lose one's life / 命を落とす / Mất mạng)

신앙 (Faith / 信仰 / Đức tin)

순교 (Martyrdom / 殉教 / Sự tử đạo)

 

2. 세 번째 소년

시도 (Attempt / 試み / Nỗ lực)

선교 (Missionary work / 宣教 / Truyền giáo)

들통나다 (To be found out / ばれる / Bị lộ)

국경 (Border / 国境 / Biên giới)

풍습 (Custom / 風習 / Phong tục)

장례를 치르다 (To hold a funeral / 葬儀を行う / Tổ chức tang lễ)

삿갓 (Conical hat / 笠 / Nón tre)

원활하다 (Smooth / 円滑だ / Suôn sẻ)

예비 (Prospective / 予備 / Dự bị)

신학생 (Seminarian / 神学生 / Chủng sinh)

만일을 대비하다 (To prepare for the worst / 万一に備える / Đề phòng bất trắc)

품을 떠나다 (To leave home / 親元を離れる / Rời vòng tay gia đình)

 

3. 마카오의 소년들

본부 (Headquarters / 本部 / Trụ sở chính)

뒤처지다 (To fall behind / 後れを取る / Tụt lại phía sau)

징검다리 (Stepping stone / 足がかり / Cầu nối)

막막하다 (At a loss / 途方に暮れる / Mờ mịt)

눈길을 끌다 (To catch one's eye / 目を引く / Thu hút sự chú ý)

동기 (Classmate / 同期 / Bạn đồng môn)

변성기 (Voice change / 声変わり / Tuổi vỡ giọng)

 

4. 조선으로 돌아가는 길

사정 (Situation / 事情 / Tình hình)

사신단 (Envoy delegation / 使節団 / Phái đoàn sứ thần)

행렬 (Procession / 行列 / Đoàn người)

가까스로 (Barely / かろうじて / Khó khăn lắm mới)

주교 (Bishop / 司教 / Giám mục)

걸림돌 (Obstacle / 妨げ / Trở ngại)

부제 (Deacon / 助祭 / Phó tế)

턱없이 (Far too / あまりにも / Quá đỗi)

아니나 다를까 (As expected / 案の定 / Quả nhiên)

(Sail / 帆 / Cánh buồm)

(Rudder / 舵 / Bánh lái)

(Oar / 櫂 / Mái chèo)

 

5. 김대건의 순교

위장하다 (To disguise oneself / 変装する / Cải trang)

관리 (Government official / 役人 / Quan lại)

단서 (Clue / 手がかり / Manh mối)

남짓하다 (A little over / 余り / Hơn một chút)

심문 (Interrogation / 尋問 / Thẩm vấn)

희생 (Casualties / 犠牲 / Thương vong)

당부 (Earnest request / 頼み / Lời dặn dò)

생을 마감하다 (To pass away / 生涯を閉じる / Khép lại cuộc đời)

조약을 맺다 (To sign a treaty / 条約を結ぶ / Ký kết hiệp ước)

성인 (Saint / 聖人 / Thánh)

선포하다 (To proclaim / 宣言する / Tuyên bố)

손에서 놓지 않다 (To never let go / 手放さない / Không buông bỏ)

끈기 (Perseverance / 粘り強さ / Sự kiên trì)

 

References

국사편찬위원회. (n.d.). 신유박해 1801. 우리역사넷.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303900&code=kc_age_30

국사편찬위원회. (n.d.). 천주교박해의 역사적 배경. In 신편 한국사 (35권). 우리역사넷.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35_0020_0030_0030_0010

박준영. (1995). 천주교 교구. In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6029

이충렬. (2022). 김대건: 조선의 첫 사제. 김영사.

조불수호조약. (n.d.). In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1837

통계청. (2016, 12월 19일). 2015 인구주택총조사 표본 집계 결과(인구.가구.주택 기본특성항목) [보도자료]. https://www.kostat.go.kr/board.es?mid=a10301020100&bid=203&act=view&list_no=358170

한국교회사연구소. (n.d.). 이승훈 李承薰(1756~1801). In 한국가톨릭대사전. https://encyclopedia.catholic.or.kr/entry/5095

한국교회사연구소. (2021).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활동과 업적. 한국교회사연구소.

 

You can listen to this podcast through the following link!

Writer
브라더윤
Share this Article
0 Comments
No comment(s) posted.